1990년대 히키코모리 장기화·고령화 새로운 사회 문제로 

1975년생 A씨는 일본 유수의 국립대 법학부를 졸업한 엘리트이지만 사법 시험에 수 년 째 낙방하자 진로를 바꾸어 대기업 취직에 도전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취업 빙하기와 맞물려 사교성 없고 내성적인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결국 2000년 초부터 부모와 함께 사는 집안 자신의 방에서 두문불출하는 히키코모리가 되었다. 변호사, 검사가 된 친구들은 수년째 A씨의 소식을 들은 사람이 없다며 걱정했지만 행여나 그의 자존심을 건드릴까 섣불리 연락도 할 수 없다. A씨의 부모는 50년대 초반 출생으로 현재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들의 히키코모리가 걱정이 되어 본인들의 노후를 돌볼 여력도 조차 상실한 상태다.

일본에서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는 1990년대 들어서부터 심각한 사회 현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보통 청소년층이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층에서 주로 발견되는 증상으로 여겨졌던 히키코모리가 고령화 및 장기화되면서 ‘중장년층 히키코모리’가 일본 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히키코모리 기간의 장기화에 따라 부모도 함께 고령이 되어 수입과 병간호 등의 문제가 겹치게 되고, 급기야 가족 전체가 고립되는 이른바 ‘8050 문제(80대 부모와 50대 자녀 문제)’로 불리는 신(新) 사회 현상이다. 

깊은 밤 일본의 한 골목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깊은 밤 일본의 한 골목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동안 일본 내각부에서는 39세까지의 젊은층을 대상으로 ‘히키코모리 전국 실태 조사’를 실시해왔다. 2010년과 2015년에 시행된 전국 실태 조사는 히키코모리의 주된 원인을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이나 등교 거부에서 찾으면서 대상 연령이 15세부터 39세까지의 젊은층에 한정되어 있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내각부가 2010년과 2015년 15세부터 39세를 대상으로 히키코모리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2015년 조사에서는 약 54만 1천명으로 2010년의 약 69만 6천명보다 줄었지만 히키코모리 기간을 ‘7년 이상’으로 답한 사람이 34.7%로 2010년의 16.9%보다 2배가량 증가했다. 히키코모리의 ‘장기화’가 수치상으로도 확인된 것이다.

이처럼 히키코모리의 장기화와 고령화가 심화되자 일본 정부가 올해 가을부터 40세부터 60세 전후를 대상으로 첫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전국에서 추출된 해당 5,000세대를 대상으로 조사원이 직접 방문해 본인이나 가족에게 직장근무 및 생활환경, 외출빈도,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와 기간,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묻고 기입하는 형태로 조사가 이뤄진다. 일각에서는 40세 이상을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히키코모리의 숫자가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 7일에는 히키코모리 당사자와 경험자가 주체가 되어 상담 및 지원 활동을 펼쳐온 전국의 단체 대표가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NPO 법인 ‘NODE’ 설립을 발표했다. 일본에서 당사자가 주체가 되어 전국 조직의 NPO 법인을 설립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으로, 향후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제공과 상담 대응 등에 나설 계획이다. ‘NODE’가 운영하는 히키코모리에 관한 종합정보 포털사이트 ‘히키페디아’(http: //hikipedia.jp/)에는 전국 각지의 당사자 및 지원 조직, 의료 기관, 히키코모리에 대한 정보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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