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체 임금노동자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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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017년 비정규직 현황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5,460만 명 가운데 37.3%에 달하는 2,036만 명이 비정규직이다. 일본의 임금노동자 10명 중 4명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셈으로 종신고용으로 알려진 일본의 고용형태는 이미 붕괴된지 오래다.

쇼와(昭和) 말기인 1984년, 전체 임금노동자 3,936만 명 중 15.3%인 604만 명이 비정규직이었으므로, 30여년에 걸쳐 비정규직노동자수는 3.3배, 비율로는 2.4배나 늘어났다. 비정규직 확대 비교 시점을 1984년으로 잡은 것은 일본경제의 버블붕괴 단초를 제공했던 플라자합의가 이듬해인 1985년 체결됐기 때문이다. 

1985년 9월 플라자합의 이후 환율은 1985년 1달러당 235엔에서 1995년 80엔까지 하락하면서 10년동안 70% 가까이 엔화가치가 절상됐다. 이 과정에서 시행된 일련의 경제정책이 일본경제를 버블로 이끈 것은 차치하고, 기업입장에서는 일본노동자의 임금이 글로벌한 관점에서 3배 가까이 뛰어버린 것과 다름 아니다. 

이로 인해 도저히 제조원가를 맞출 수 없게 된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생산거점을 대거 해외로 이전하게 되고, 국내에 남아있는 공장들은 종신고용이나 승진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비정규직을 앞다퉈 고용하기 시작했다. 산업공동화 현상이라고도 불리우리 만큼 당시 일본기업들의 해외진출은 활발했고, 이는 고스란히 비정규직 확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원인은 버블 붕괴 이후 일본정부가 시도한 무리한 경기부양책으로 인해 재정건정성이 악화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버블이 붕괴되면서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일본정부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의 4년동안 65조 5천억 엔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공공투자를 단행했지만, 경기부양은 커녕 오히려 재정건전성만 헤치는 결과를 초래했다. 재정이 악화된 정부가 세출을 삭감하면서 도로, 철도 등 정부주도의 사회간접자본투자가 줄어들자 건설업을 중심으로 혹독한 고용한파가 몰아닥쳤다. 이로 인해 당시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구직포기를 강요당하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렸다.

오랜기간 이어져오던 소규모 점포 등 자영업 중심의 소매유통업계가 본격적으로 대형체인점화되기 시작한 것도 비정규직 양산을 부채질했다. 실제로 총무성통계국의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가족종업원을 포함한 자영업자수는 1990년 1,390만 명에서 2011년 2월 시점 711만 명으로 20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어든 반면, 같은 기간 비정규직은 817만 명에서 1,763만 명으로 2배 넘게 늘어났다. 

이 외에도 노동자파견법이나 고령자고용안정법 등 법적 제도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버블 붕괴이후 위와 같은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리면서 실업률은 계속 높아져 1999년에는 4.7%, 2000년 3월에는 5.2%로 전후 최고치를 갱신했다.

2017년 기준 총 2036만 명의 비정규직노동자 중 가장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55세에서 64세로 20.7%였다. 그 다음으로  45세~54세가 20.3%, 35세~44세가 18.3%, 65세이상이 15.5%, 25세~34세가 13.5%,15세~24세가 11.8%를 차지했다. 

유효구인배율이 1.0배를 밑돌던 1993년부터 2005년사이 이른바 '취업빙하기'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연령대는 현재의 35세~44세와 45세~54세로 가장 혹독했던 고용한파를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미 은퇴시기에 접어들어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55세~64세를 제외하고는 이들 연령대의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은 셈이다.

고용형태별로 보면 전체 비정규직노동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은 파트타임직으로 997만 명(49.0%), 다음으로 아르바이트 417만 명(20.5%), 계약사원 291만 명(14.3%), 파견사원 134만 명(6.6%), 촉탁직 120만 명(5.9%), 그 외 78만 명(3.8%)순 이었다.

단순히 비정규직노동자의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 등도 매우 열악한 수준을 보였는데, 시급기준으로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50세~54세 연령대로 정규직 시급 2,403엔의 절반 수준인 1,259엔에 그쳤다.

그리고 노동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없어서 비정규직노동자로서 근무하는 비자발적 비정규직은 총 315만명이었다. 이 중 청년층인 25세~34세가 가장 높은 비중(26.5%)을 차지해 최근의 고용환경을 무색하게 만든 결과를 보였다. 유효구인배율이 1.5배가 넘는 구직자중심의 고용환경 속에서도 정규직 등 안정적인 일자리는 여전히 부족한 현실을 여실히 꼬집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임금 뿐만 아니라, 각종 보험, 연금, 퇴직금, 상여금 등의 격차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퇴직금 제도 적용을 받는 정규직이 80.6%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9.6%에 그치는 등 노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들 히키코모리의 출현은 취업빙하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들이 히키코모리가 된 원인의 대부분은 취업실패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는 미혼율과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일본 총무성의 2012년 취업구조 기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수입이 낮은 남성일 수록 미혼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연수입 200만엔 미만의 언더클래스의 경우 미혼율은 60%에 달한 반면 연수입 800만엔 이상의 고소득자의 경우 미혼율은 10%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삼포세대'가 극심한 취업난과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듯이 일본의 '히키코모리'도 취업실패로 인해 연애와 결혼까지 포기하게 되는 삶을 강요당했다고 볼 수 있다. 

혹독한 고용한파 속에서 구직 포기를 강요당해야 했던 취업빙하기세대의 생애미혼율이 치솟는 것도 문제다. 일본에서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증가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부터다. 2015년 기준 만 50세까지 한번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생애미혼율은 남성의 경우 23.5%, 여성이 14.7%에 달한다. 

이들 생애미혼 1세대들이 부모와의 동거를 선택하는 '미혼동거'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는데 미혼이라도 부모와의 동거가 드물던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동거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부모수입에 의존하는 사람이 60%이상이라는 조사결과도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일본의 '미혼동거' 증가가 심각한 것은 바로 이점이다. 미혼인 채로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부모를 부양하는 부양 목적의 동거보다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수입에 의존해 동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모의 수입에 의존하는 이들 40~50대 중장년 미혼자 중 절반가까이는 정상적인 사회복구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건강하던 부모가 병에 걸리거나 죽고나면 가정은 파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한 50대 남성은 "부모가 죽고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다. 오로지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 뿐이다. 계속 일을 하고 싶지만 정규직의 벽은 높기만 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이 한스럽다"며 자신을 저버린 일본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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