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위크 연휴가 한창인 어느 오후. 도쿄 아키하바라역 앞 교차로에는 커다란 짐가방을 짊어진 채 분주히 오가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관광객을 노린 탓일까, 역앞에 자리잡은 전자제품 할인점 요도바시카메라(ヨドバシカメラ) 입구의 매대에 진열된 인기상품들은 화장품이나, 의약품 등으로 전자제품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앞다투어 상품들을 구매하고 있는 관광객들부터, “손님들의 대부분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오신 분 들입니다”며 매장앞에서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는 점원들까지, 모두 중국인이었다.

우리나라의 용산전자상가처럼 온갖 전자제품의 천국으로 알려진 아키하바라(秋葉原)이지만, 과거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큰길을 따라 늘어선 대형 백화점에는 게임용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걸려있고 소규모 컴퓨터 매장이 즐비했던 골목길에는 중고책방, 코스프레 숍, 메이드카페(종업원이 메이드 복장을 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의 요식업)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아키하바라역 앞에 위치한 요도바시카메라 앞의 붐비는 인파 (사진=윤이나 기자)<br>
아키하바라역 앞에 위치한 요도바시카메라 앞의 붐비는 인파 (사진=윤이나 기자)

아키하바라는 세계 2차 대전 이전만 해도 주변의 칸다(神田), 우에노(上野)와 같은 번화가에 밀려 상가로서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전쟁이 끝난 이후 구 일본군이나 미군의 불하품이 거래되는 암시장이 형성되고, 그 부근에 있던 전기공업전문학교(현 도쿄전기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라디오 조립이 유행하면서, 아키하바라 일대의 많은 노점상들은 진공관을 위시한 전자부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또 당시 아키하바라는 국철(현 JR)을 비롯한 복수의 철도 노선이 지나는 등 접근성이 좋아 소규모 전자부품 매장들이 하나둘씩 아키하바라에 둥지를 틀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걸친 일본의 고속 성장기와 더불어 일본인들의 생활 수준 또한 빠르게 진보했고, 그에 따라 가전제품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아키하바라는 가전제품의 도소매상가로 유명세를 떨쳤다. 한국의 용산 전자상가와도 같은 전자상가의 대명사적인 이미지는 이때 굳어졌다. 

1970년대 들어서는 퍼스널컴퓨터(PC)의 등장과 함께 아키하바라는 새로운 격변기를 맞는다. 1976년 NEC가 마이크로 컴퓨터 제작 키트인 TK-80의 선전과 판매 목적으로 문을 연 아키하바라 최초의 컴퓨터 전문매장 Bit-INN을 계기로 컴퓨터 전문점이 하나 둘씩 들어서고, 컴퓨터 조립이나 제작, 개조에 관심있는 컴퓨터 매니아(오타쿠)들이 모여들면서 아키하바라는 전자상가에서 컴퓨터상가의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이와 더불어 아키하바라역 앞의 시설이 폐지, 이전되면서 외부적인 환경도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1975년 아키하바라역 동쪽에 있던 국철 화물역사가 문을 닫고, 1989년 역 서쪽의 칸다(神田)청과시장이 오오타구(大田區)로 이전하면서 철도공단이 보유했던 토지 약 16,620㎡와, 칸다청과시장이 자리했던 15,740㎡의 광활한 부지가 탄생했다.

도쿄역에서 불과 두 정거장 밖에 떨어지지 않은 입지조건에 더해, 광활한 면적의 토지가 도쿄 도심에 생기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도쿄도도 1990년부터 시작된 '제3차 도쿄장기계획' 아래 아키하바라역 부근 부지 개발에 적극 뛰어들었다. 1993년에는 죠반신센(常盤新線, 현 츠쿠바익스프레스)이 연결되면서 재개발이 더욱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제 컴퓨터나 전자제품의 경쟁력이 줄고 요도바시카메라, 빅카메라 등 대형 전자제품 할인매장이 생기면서 작은 전자제품점들이 밀집한 오밀조밀하고 오타쿠적인 아키하바라만의 특징이 옅어지고, 인기도 같이 쇠락했다. 

1990년대 후반, 급부상한 대형할인점의 공세에 시달리던 아키하바라의 소규모 전자제품점들은 가전제품이나 컴퓨터의 판매부진을 메우고자 게임기와 게임소프트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게임 전문점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이곳을 드나드는 게임 오타쿠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또한 이들 수요에 맞춰 게임캐릭터를 소재로 한 피규어 전문점이 소규모 컴퓨터매장들이 떠난 자리를 메꾸기 시작했다. 

컴퓨터상가로서의 아키하바라를 상징하던 Bit-INN이 2001년 8월 폐점하고, 그 자리에 구체관절인형 전문 모형업체 '보크스'의 쇼룸이 확장해 들어왔다. 이는 아키하바라가 더이상 컴퓨터상가가 아니라 오타쿠의 거리로 바뀌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실제로 아키하바라 중앙로에는 컴퓨터나 전자제품 전문점보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피규어 전문점이 더 많다. 현재 아키하바라는 전자제품이나 컴퓨터 등 하드웨어적인 이미지 보다는 게임 캐릭터나 애니메이션 등 소프트웨어적인 이미지가 강해졌다. 

큰길을 따라 늘어선 백화점에 대형 게임용 애니메이션 캐릭터 광고판이 걸려있다. (사진=윤이나 기자)

한편, 재개발 첫삽을 뜬지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가는 아키하바라 부근의 풍경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재개발을 통해 도쿄도가 목표로 했던 것은 ‘IT 거점’으로서의 아키하바라였다. 도쿄도가 2001년 책정한 아키하바라 개발 가이드라인을 보면, ‘차세대 멀티 미디어 사회활동의 장’이라는 컨셉 아래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로서의 사회기반 정비’가 목표였다. 

재개발 사업 개시 이후, 아키하바라에는 아키하바라UDX, 아키하바라 다이빌딩, 후지소프트빌딩 등, 이벤트 홀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공간과 오피스공간이 공존하는 복합상업시설이 차례차례 들어섰다. 그리고 현재 스미토모부동산이 한창 건설중인 만세이바시(万世橋)빌딩 등을 포함하면, 재개발 방침 이후 아키하바라에 지어진 고층건물은 전부 19동, 면적으로 치면 60만㎡에 이른다. 개발이 진행되고 거리가 정비되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2005년 츠쿠바 익스프레스 개통을 계기로 JR과 도쿄메트로를 합한 아키하바라역의 승객 수는 개통 전보다 2배 이상 늘어 2017년 기준 하루 승객 수는 73만명에 달한다.

스미토모부동산이 건설중인 만세이바시(万世橋)빌딩. 아키하바라 전자상가 바로 옆에 한창 건설 중이다. (사진-윤이나 기자)

하지만, 야마다 전기 등 대형 전자제품할인점이 전통상가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아키하바라에 자리잡으며, 과거 중소규모 전자제품점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아키하바라의 이미지는 퇴색됐다. 아키하바라전자상가진흥회의 오기노 다카시게(荻野 高重)사무국장은 “대규모 가전할인매장의 진출로, 작은 전자제품점들의 집합이라는 아키하바라만의 매력이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소규모 전자제품점 뿐이었더라면 아키하바라는 지금처럼 번창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자상가라는 특징을 내세우면서도 브랜드, 컬쳐 등의 발신지로서도 존재감을 높여가고 싶다"라고도 말했다. 아키하바라가 단순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도쿄의 번화가 중 하나’에 그치지 않고 아키하바라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당초 구상했던 ‘IT 거점’으로 재탄생할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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