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의 등장은 물론이고 인터넷으로도 물건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상점가’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시장들이 매상 저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인구감소와 도시로의 인구유출에 더해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형마트와 인터넷쇼핑몰까지 등장하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겨 문을 닫는 가게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셔터가(셔터가 내려진 상점가)’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기에 이르른 상태다.

도쿄 나카노의 가와시마 시장은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산하다. <사진=김민정기자>

2015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일본 상점가 내 점포의 14%는 주인 없는 문 닫힌 가게며, 시장 내 상점운영자의 70%가 앞으로 시장이 더 쇠퇴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상점가에 활기를 불어넣는 시도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일명 '셔터가 재생프로젝트'다. 

7일 아사히 신문은 오사카(大阪) '신세카이 시장(新世界市場)'을 소개했다. 1914년에 수산시장으로 문을 연 후 ‘오사카의 위장’이라 불리며 인기를 끌던 신세카이 시장은 20년 전부터 가게 주인들의 고령화와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생선, 야채가게들이 줄줄이 폐점했다. 

오사카 '신세카이 시장'이 셔터가를 탈출하기 위해 시작한 '위크엔드 프라이스레스 마켓'은 손님과의 교류를 위해 일부러 가격표를 붙이지 않고 장사를 한다 <출처=위크엔드 프라이스레스 마켓 홈페이지>

평일에는 쥐죽은 듯 조용하던 이곳이 최근 일요일만 되면 활기를 되찾는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위크엔드 프라이스레스 마켓’ 때문이다. 셔터를 내렸던 가게들이 문을 열고, 텅빈 공간에는 노점상들이 들어선다. ‘프라이스레스’ 즉 가격표 없는 시장으로 승부에 나선 것이다. 

가격표가 없다보니 가격을 물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정가표시가 기본인 일본에서 살아온 젊은이들에겐 색다른 경험이라고 한다. 일본인, 외국인 너나 할 것 없이 "고레 난보?(가격을 묻는 오사카 사투리)"하고 묻는 것에서 쇼핑이 시작된다. 가격정가제를 선호해 온 까닭에 시장 특유의 정이 사라졌다고 보고, 옛시장의 따뜻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도록 가격표 없는 시장을 열게 된 것이다. 

‘위크엔드 프라이스레스 마켓’을 운영하는 모리타 준타(30)는 아사히 신문 취재에서 "시장은 가게들간에 긴밀한 연대관계가 살아있고, 인정과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라며 "젊은이들을 시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가격표 없는 시장"을 열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가격표가 없는 것만이 매력이 아니다. 가격표가 없어도 과거 호황이던 시절을 연출하기 위해 천장에는 빨간 초롱을 잔뜩 달았다. 이 초롱빛 아래 펼쳐진 시장의 모습이 인스타그램으로 퍼져나가면서 젊은층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아부라쓰 시장'은 프로야구팀 히로시마 카프의 전지훈련장이 있는 곳으로, 히로시마 카프색으로 역을 새단장했고, 이후 히로시마 카프팬들이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출처=니치난시 관광협회 홈페이지>

아예 지자체가 시장 재생프로젝트에 전문가를 투입해서 큰 성과를 올린 곳도 있다. 지난 한해 일본 각 언론에 등장하며 성공적인 재생프로젝트로 소개된 곳은 미야자키현(宮崎県) 니치난시(日南市)에 위치한 ‘아부라쓰(油津)상점가’다. 

2013년 당시 시장 내 점포의 26%가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시장에서 아이들이 야구도 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만큼 길거리가 텅텅 비어 있었다. 결국 니치난시는 시장부흥프로젝트를 위한 인재 공모를 시작했고 333명의 응모자 중 도시디자인 전문가 기토 료타(木藤亮太)를 채용했다. 

기토 료타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4년간 29개 점포를 유치했다. 일단 시장내에 어린이집을 세워서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녀가 다닐 수 있도록 했다. 채소가게, 건어물가게, 생선가게 등 문을 닫은 곳에는 카페, 게스트하우스, IT기업 등 지금까지의 ‘시장’과는 다른 점포들을 유치했다. 기토 류타는 닛케이(日経)신문 인터뷰에서 "과거의 시장이 과거 상태로 유지될 수는 없다"며 과감한 변신을 선택했다고 털어놓았다. 

사가현(佐賀県) 기야마마을(基山町)의 ‘기야마 몰 상점가’는 1982년에 생긴 일본 최초 몰 형태의 시장이다. 개업 당시의 인기는 점주의 고령화, 대형마트의 등장으로 사그라들고 폐점이 잇따랐다. 결국 시장 살리기를 위해 ‘아부라쓰 상점가’보다 적극적으로 주민교류를 위한 시설을 유치했다. 

기야마 몰 상점가는 마을사람들의 교류의 장인 공민관을 유치한 후, 지난해에는 어린이집을 유치해 시장을 찾는 고객층을 확대시켰다. <출처=기야마 몰 상점가 홈페이지>

2014년 지역교류의 중심인 공민관을 설치, 고령자들이 지역 중심으로 몰리면서 활기를 띄게 되었고, 이를 본받아 지난해에는 어린이집을 유치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문 닫힌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고 부모들이 아침 저녁으로 지나가면서 상점가를 이용하는 빈도가 증가했다. 앞으로 시니어 세대를 위한 돌봄센터, 발달장애아 지원시설이 빈 시장 공간에 오픈할 예정이다. 다양한 주민들의 교류를 통해 시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본보기가 된 셈이다.

'고기 점보'. 나카노 시장의 고기점보는 원래는 정육점이었지만 최근엔 수퍼로 변신해서 영업중이다. <사진=김민정기자>

일본의 상점가는 1998년 대형점포 규제완화 이후, 점점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2003년에는 빈 점포가 7.3%에서 2012년 이후에는 14%대에 달했다. 닛케이 신문은 시장 재생을 위한 방법으로 첫째, 현행유지(가격 인하 및 포인트 카드 등으로 고객을 유지하는 방식), 둘째 테마파크형을 들고 있다. 도쿄 '아사쿠사' '갓파바시'처럼 한 가지 테마로 전문적인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셋째로 재개발(역사를 보존하며 몰 형태로 변화), 마지막으로 마을살리기와 연계하기를 꼽았다. 즉 마을에 필요한 다양한 주민을 위한 시설을 유치해 살기 좋은 동네를 시장 안에 만드는 방식이다. 시장살리기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적지 않은 가운데, 일본의 상점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셔터가 재생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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