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도쿄올림픽 이후 경기후퇴기 진입 전망

일본의 증권거래소 현황판 옆을 직장인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권 정당성 마저 훼손···아베노믹스 지속 불투명

20여 년에 걸친 장기불황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있다고 평가받는 일본경제는 올해부터 2020년까지 아키히토 일왕의 퇴임, 소비세율 인상,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 평화헌법 개정 등 굵직 굵직한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일본경제가 이들 이슈가 몰고올 충격파를 견뎌내고 경기 호황을 이어가기에는 대내외적인 상황이나 조건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일본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4% 기록하며 8분기 연속 '플러스' 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2001년 초 이후 가장 긴 확장세다. 지난 2017년 7~9월기에는 실질국내총생산(GDP)가 연율 환산으로 2.5% 증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일본경제의 한축을 담당하는 소비도 활발해 지고 있다. 지난달 일본의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4% 증가했다. 전년 동기대비로는 1.6%를 기록 꾸준히 소비심리가 회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비자들의 지출 증가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으로 이어져, 일본은행(BOJ)이 목표로 하는 2% 물가상승률 목표에 근접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1.4% 오르며 1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최근 "더이상 일본경제는 디플레이션 환경에 놓여있지 않다"며 "일본경제가 완만히 확장하고 있고 소득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일본 금융·통화정책 최고 결정권자가 직접 디플레 탈출의 종언을 고한 셈이다.

그래픽=김승종기자 / 자료=일본총무성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들의 실적도 눈부시다. 지난해 10대 기업의 연간 매출은 123조1020억엔, 당기순이익은 7조1700억엔으로 전년 대비 2.1%와 25.5% 늘어났다. 특히 당기순이익은 2년 연속 사상 최대다. 엔화약세에 따른 실적개선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한 덕이 컸다. 한때 파산 직전까지 갔던 소니는 핵심 역량 제품에 집중한 결과, 2017 회계연도에 70년 역사상 최대인 8조5000억 엔의 매출과 4800억 엔의 당기순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당기순이익은 2012년의 11배가 넘는다. 파나소닉도 2000년대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와 디지털카메라 등을 매각하고 차세대 산업 중심으로 구조를 바꾸고 부활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같은 기업들의 노력에 힘입어 2013년 10위까지 떨어졌던 일본의 제조업경쟁력지수도 최근 4위로 반등했다.

기업들의 실적향상에 힘입어 지난해 1년 간 닛케이 평균주가는 19.1%나 폭등해 2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가 하면, 버블이후 최장인 6년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닛케이 평균주가 상승의 원동력은 과감한 양적완화와 재정지출 확대, 그리고 구조개혁 등으로 요약되는 ‘아베노믹스’다. 여기에 새로운 미래산업 발굴에 주력한 기업의 혁신노력과 정부의 과감한 규제 철폐 및 법인세 인하 등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향후 일본의 주식시장은 아베노믹스 시행을 전후로 입사한 세대가 90년대 초반 버블붕괴 함께 주식시장을 떠났던 세대의 빈자리를 메우면서 주가 상승의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정권이 국민적 비난 속에서 실각하지 않고 아베노믹스를 이어간다면 닛케이 평균주가가 과거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각종 경제지표도 아베노믹스의 긍정적인 효과를 뒷받침하고 잇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생산가능인구감소 영향도 크지만 지난 1월 일본의 실업률은 2.4%로 1993년 4월(2.3%)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구직의사는 있지만 근무조건 등이 맞지 않아 취업을 하지 않고 있는 '불일치 실업률'이 3%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실업률 2.4%는 일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언제든지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완전고용' 상태로 간주할 수 있다.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수를 나타내는 유효구인배율도 1.59배로 1974년 1월 이후 최고치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불거진 사학스캔들 문서조작 사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아베정권의 지지가 굳건한 것은 구직자 중심의 고용환경이 수년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황으로 인해 극심한 취업난을 겪었던 세대에게 아베정권은 더없이 든든한 버팀목인 셈이다.

그래픽=김승종 기자 / 자료 일본총무성

이외의 각종지표에서 나타나는 일본경제의 앞날도 무척이나 순탄해 보인다. 일본정부가 지난해 12월 국무회의에 제출한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017년 1.9%, 2018년 1.8%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일본은행이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경제·물가정세 전망'에 따르면 2019년에는 0.7%로 대폭 낮아진다. 거의 폭락 수준이다. 일부 전문가들도 2019년 후반부터 일본경제가 경기후퇴기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전망이 나오는 배경으로는 2019년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소비세율 인상과 2020년 도쿄올림픽 건설특수의 소멸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의 경기가 지난해 7월 기준 9년 째 확대국면을 이어가면서 2020년까지 경기후퇴기에 진입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미국이 경기후퇴기에 접어들면 금융완화정책 도입이 불가피하고 이는 미일 금리차를 축소시켜 엔화 강세를 부른다. 엔화약세를 유도해 수출기업의 실적개선을 유도했던 아베노믹스에겐 가장 원치 않는 흐름이다. 만약에 엔화가 1달러당 100엔에서 90엔대로 급격하게 높아지면 경기는 빠르게 얼어붙고, 실업률은 다시금 상승할 수 밖에 없다. 2020년 전반까지는 경기호황이 이어지겠지만, 후반부터는 불황의 그림자가 다시금 드리워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일본은행은 지난 2013년 4월부터 국채 등을 대량 매입해 통화공급량을 늘려 '2년 안에 물가상승률 2%'라는 목표를 내걸고 대담한 양적·질적(이차원)금융완화를 실시했다. 2016년엔 마이너스금리 정책까지 도입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이차원금융완화정책은 엔저나 주가, 부동산가격을 올려놓았지만 정작 목표였던 물가상승률 2%는 여전히 달성하지 못한 상태다. 오히려 2016년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대비 0.3% 하락하기도 했다. 2017년 초부터는 상승폭이 커지면서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동기 대비 1.4%를 기록 중이다. 

변수는 소비세율 인상이다. 2014년 4월 소비세율 인상 이전에는 증세 직전 수요와 더불어 엔화약세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효과에 힘입어 물가상승률이 1.3%까지 상승한 사례가 있고, 올해 물가는 평균 1%대를 유지할 것으로 보여 2019년 증세 이전에 물가상승률 2%는 달성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물가상승률 2% 목표가 달성되면, 일본은행의 금융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 이후, 시장참가자들이 일본은행의 금융정책 변화기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현재 0% 가까운 장기금리(신규발행 10년물국채금리)는 1%, 2%로 상승하게 된다. 이같은 장기금리 상승은 시장에 커다란 충격요인으로 작용한다. 고정금리의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연동돼 오르고 국채비용도 증가돼 일본정부의 재정부담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아베총리는 지난 2월 구로다 총재를 연임시키고 2020도쿄올림픽 이후까지 경기 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지출 방안 마련을 정부에 지시했다. 금융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로 소비와 수출을 진작시킨다는 ‘아베노믹스’ 전략을 집권기 내내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대내외적인 상황이나 조건은 아베정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다. 최근엔 정권의 정당성마저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호황의 온기가 퍼지기도 전에 다시금 불황을 걱정해야 하는 일본경제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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