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공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하치공 이야기는 한국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널리 알려진 일화다. 1924년 1월, 생후 약 50일 정도의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열차에 실려 아키타(秋田)에서 도쿄에 도착했다. 혼슈(本州) 북부의 아키타현은 한국의 진도처럼 충성스럽고 용맹한 명품 개로 유명한 고장이다.  

동경대학 농학부 교수와 인연을 맺게 된 아키타견 하치는 극진한 보살핌 덕분에 허약했던 몸에서 건강을 되찾아 무럭무럭 자라났다. 매일 문 앞까지 나와 주인을 배웅하거나 시부야(渋谷)역까지 마중 나갈 정도로 주인을 따랐다. 교수의 제자들은 하치의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를 수 없어 ‘하치공’으로 부르며 경의를 표했다. 

약 1년 반이 지난 1925년 5월 21일, 교수가 급사한 후에도 하치는 여느 때처럼 시부야역까지 나가 한참을 기다리다 돌아오곤 했다. 인근의 상인들에게는 장사에 방해된다는 이유 등으로 이리저리 쫓기기도 했다. 1932년 10월 4일, ‘일본견보존회’를 조직한 사이토 히로키치(斎藤弘吉)가 하치의 사연을 알고 이를 아사히신문에 기고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됐다. 

시부야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하치공 동상 <사진=최지희 기자>

하치는 이후에도 10여 년 간 시부야역을 밤낮으로 오가며 주인을 기다린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결국 1935년 3월 8일 13살의 세상을 떠나고 만다. 주인을 기다리는 하치의 모습은 시부야역 앞의 동상으로 남아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1987년에는 일본에서 ‘하치공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일본인들이 눈시울을 적셨고, 2009년에는 리차드 기어 주연의 헐리우드 영화로 리메이크되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특히 ‘HACHI’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이 영화 덕분에 수많은 외국인 팬을 얻게 되었고, 그 결과 해외에서 아키타견 분양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하게 됐다. 

아키타견은 2012년 일본 정부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해 러시아에서도 주목받게 되었다. ‘유메(꿈)’라는 이름의 5마리 새끼 아키타견의 사랑스러운 모습은 러시아 사람들에게 ‘한번 쯤 키워보고 싶은 개’로 각인됐다. 평창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알리나 자기토바 선수가 ‘부모님이 금메달을 따면 아키타견을 키우게 해준다고 했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한동안 일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편 JR시부야역에는 ‘하치공 출구’라는 이름의 출구가 있을 만큼 하치공 동상은 시부야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동상 주변은 늘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기념사진을 찍느라 인산인해를 이룬다. 지금의 동상은 1934년 처음 시부야역에 세워졌다가 1948년 재건된 것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15년 3월 8일, 하치공과 교수가 마주보며 반가워하는 모습의 동상이 교수가 재직하던 동경대학교 농학부 정문 옆에 세워진 것을 아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 ‘우에노 에이자부로(上野英三郎) 박사와 하치공’이라는 동상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들며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동경대학교 농학부 정문 왼편에 위치한 ‘우에노 에이자부로(上野英三郎) 박사와 하치공’ 동상 <사진=최지희 기자>

하치는 1935년 3월 8일 오후 2시 사망으로부터 13시간 후 동경대학 농학부 수의학과 연구팀에 의해 해부되었는데, 당시의 해부 기록에 따르면 사인(死因)은 심장사상충으로 판명되었다. 하치의 폐와 심장, 간 등의 장기는 해부 직후 영구 보관되어 76년간 수의병리학연구실에 보관되었다. 하치의 가죽은 박제로 만들어져 도쿄국립과학박물관에 전시되었고, 남은 유해는 도쿄 아오야마(青山) 공동묘지의 우에노 교수 옆에 묻혀있다.

동경대 농학자료관에 전시된 하치공의 심장.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모습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2006년부터는 농학부 정문 오른편에 위치한 농학자료관에 하치의 장기가 전시되고 있다. 농학자료관은 하치와 우에노 교수의 동상과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단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하치의 심장을 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자료관에는 하치공의 장기 분석 결과를 비롯한 사인에 관한 자료와 함께, 하치와 우에노 교수의 일대기, 동상 제막식의 모습 등 하치와 관련한 자료들이 함께 진열되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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