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1. 영업사원 A씨(35), 하루 종일 이리저리 일에 치이고 상사에게 야단맞고 거래처 끊기고 정말 고단한 날이었다. 퇴근길 만 원짜리 지폐를 바꿔 인형 뽑기에 도전한다. 온정신을 집중하고 인형을 잡았다. 성공이다. 하루 종일 힘들었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인형 뽑기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자 소확행이다.

#2.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인 B씨(27), 상반기 대기업 공채시즌이다. 이번에 쓰는 자기소개서가 몇 통째인지 모르겠다. 자소서 쓴 양으로 채용된다면 이미 직장에 다니고 있을 만큼 많이 썼다. 친구들 휴학할 때 휴학 한번 안하고 대학 4년을 스트레이트로 졸업했으나 취업준비가 1년이 넘어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졸업 안하고 휴학했을 터인데 이제는 졸업년도가 취직에 발목을 잡는다. 자소서 쓰고 있는 새벽녘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얼마나 달콤한지 모른다. 수증기 하얗게 피어오르고 향내 가득한 커피 내음을 맡고 있는 지금은 취준생임을 잊게 해준다. 나에게 소확행인 순간이다.

#3. 둘째 낳고 전업주부 된 C씨(37), 첫째 학교 보내고 둘째 어린이집 보내놓고 빵 나오는 시간을 맞춰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신학기 적응기를 심하게 겪는 아이들 때문에 심신이 지친다. 지친 심신에 위로가 되어줄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나온 식빵을 뜯으면 가로결로 부드럽게 뜯기는 식빵의 질감과 입안에 넣었을 때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녀만의 소확행이 되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다.

이처럼 최근 ‘소확행’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다. 작년에 ‘욜로’에 이어 서서히 불기 시작하더니 2018년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잡을 만큼 각 영역에서 ‘소확행’ 열풍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의미인 소확행은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랑겔한스섬의 오후>(1986)에서 처음 쓰인 말로 이미 오래전에 나왔던 말이다.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하는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소소한 즐거움의 의미가 컸다. 이와 유사한 용어로 스웨덴의 ‘라곰’ 프랑스의 ‘오캄’ 뎀마크의 ‘휘게’ 등이 있다.

20년도 더 전에 나왔던 용어가 왜 지금 뜨고 있는 걸까? 소확행이 뜨고 있는 이면에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지속적인 저성장 기조에서 ‘상대적인 박탈감’과 ‘내일은 오늘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전제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반대급부로 작은 일에도 만감하게 반응하고 현실에서 즉각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소비로 관심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둘째, 소통방식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통신기술과 관련 서비스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소비가 단지 생존의 필요만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관련이 있게 된다. SNS의 발달로 ‘나 이렇게 행복해’라는 소확행이 ‘나도 너만큼 행복해’로 확대 재생산 되는 것이다.

셋째, 저출산 고령화로 대표되는 인구의 변화다. 이런 변화는 기존의 혈연 중심의 가족관계가 변화해 기능적 관계와 대안적 가족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람과의 관계 보다는 반려동물과의 교감이 더 늘고 반려식물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관계의 본질이 깊으냐 얕으냐의 심도 문제가 아니라 필요, 애착, 소통의 필요를 누가 더 충족시켜 줄 수 있느냐의 기능문제가 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면서 나만의 관계 속에서 행복 추구가 더 활발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1인 가구의 증가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20년 전 작가의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인한 소확행이 이젠 트랜트화 되어 각자의 소확행으로 확대생산 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불확실성 시대에 부정적인 마음보다는 긍정적인 마음의 ‘소확행’이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다면 ‘대확행’이 올 수 있을까? 20년 전에 이미 소확행을 예견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관력이 놀랍다.

이와 같은 의미로 영화부문에서도 소확행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고 있다. 오늘 개봉하는 청춘판타지 영화 ‘소공녀’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 지난해 말 개봉한 ‘패터슨’(짐 자무쉬 감독)이 그것이다. 세 영화 모두 커다란 갈등구조가 없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너무나 일상적인 저예산 영화지만 그 속에 소확행을 담고 있어서 관객들을 모으는 힘이 있다. 평안하고 기분 좋은 휴식 같은 영화 속에서 찾는 나만의 ‘소확행’이 이들 영화의 매력이다.

이러한 일련의 소확행이 쌓이고 쌓여 변화를 가져오고 미래의 불확실에서도 확실한 무엇을 찾아 ‘대확행’을 꿈 꿀 수 있다면 2018년 ‘소확행’ 열풍은 트랜드이자 대안일 수 있겠으나 작고 소중한 것에만 머물러 미래를 꿈꾸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급변하는 제4차 산업혁명에 주인이 아닌 주변인이 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작고 소소한 행복도 찾으면서 미래를 견지할 수 있는 나만의 확실한 그 ‘무엇’이 필요할 때이다. 누구하고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매력 포인트’를 갖고 있다면 미래의 확실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소확행’에 취해 미래를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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