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및 납치 문제 이끌 원동력도 상실 우려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간 아소 재무상의 거취 뿐 아니라 아베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일본 모 언론사 정치부 국장) 

엎친 데 덮친 격이란 표현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 없다. 한국 특사단의 방북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대두된 ‘일본 패싱’ 우려에 대응할 여유도 현재로선 없는 상태다. 그 어떤 스캔들에도 흔들림 없이 공고하던 아베 정권이 이달 초 아사히신문의 보도로 알려지게 된 ‘모리토모 문서 조작’ 파문으로 정권 최대 위기를 맞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2일 사학재단 모리토모(森友)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해 재무성의 문서 조작을 인정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직접 국민들 앞에 나서 사과하는 모습은 웬만해선 보기 힘든 광경이다. 지난해 2월,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이 처음 터졌을 때만 해도 국회에 출석해 “전혀 모른다”며 자신 만만하게 답변하던 총리였다. “나와 아내가 관련된 게 맞다면 총리직도 내려놓겠다”고 내뱉은 그 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오진 않을지, 일본 정계가 시계 제로의 긴장에 휩싸여 있다.

12일 오후 5시 경 총리 관저에서 아베총리는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 숙였다. <TV아사히 뉴스 화면 캡쳐>

“이번 일로 인한 국민 여러분의 따가운 시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며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전모를 규명하기 위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미 정계 안팎에서는 ‘총리가 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요미우리신문이 10~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아베 내각 지지율이 한 달 전보다 6% 하락한 48%를 나타냈다. 지난 해 10월 중의원 선거 압승 후 지지율이 50% 이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입 과정에 아베 총리와 아키에(昭恵) 여사가 관여된 문제는 1년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것이었다. 별다른 진전 없이 넘어가는 듯 하던 사건은 처음 해당 문제를 제기했던 아사히신문이 이달 2일 새로운 의혹을 제기하면서 급반전을 맞았다. 국유지 매입 과정의 당사자인 재무성이 계약 당시 작성했던 문서와, 문제가 불거진 후 국회에 제출한 자료가 상당 부분 달라졌음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조작된 문서에는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던 아키에 여사와 모리토모와의 연관성을 언급한 내용이 모두 삭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권의 도덕성에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9일에는 당시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매입에 관한 교섭과 계약을 담당한 재무성 관료가 자살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고, 담당 국장이었던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寿) 국세청장이 전격 사퇴했다. 사흘 뒤인 12일, 재무성은 결국 “문서 조작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 지난 1년간 국회에서 공방을 벌여온 문서가 ‘위조문서’였다는 사실에 일본 여론은 분노에 떨고 있다. 

78페이지에 달하는 재무성의 모리토모 관련 문서 중 상당 부분이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 < TV아사히 뉴스 화면 캡쳐>

“북한도 힘 빠진 아베 정권과 협상하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언론 관계자)

한편 압력 노선 일변도였던 미국 트럼프 정권이 북미정상회담의 뜻을 내비추자 일본 외교가는 또다시 충격에 휩싸였다. “이렇게 빨리 대화한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외무성 간부)”며 북한의 비핵화 교섭 과정에서 ‘일본 패싱’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지 경계감이 확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9일 트럼프 대통령과 약 30분간 전화 협의를 갖고 4월 초 급거 미국을 방문하여 향후 북한의 대응에 대해 회담을 가질 것을 약속했다. 기자단의 질문에는 “미일은 앞으로도 100% 함께한다는 점에 일치했다”고 강조하며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했다.

‘일본 패싱’ 우려를 지적한 아사히 신문 10일자 조간신문 보도

일본은 최종적으로는 북미 대화가 이뤄지더라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에 응하는 등 구체적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대화나 교섭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계속해서 미측에 전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은 ‘일본과 사전 협의 없이’ 대화를 결단하면서, 정권 내에서는 북한을 둘러싼 논의에서 일본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아베 총리가 급하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방미를 결정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터진 정권 최대의 스캔들은 북핵 문제를 이끌고 갈 동력까지도 상실케 하고 있다. ‘뭘 해도 모리토모 스캔들을 덮기 위한 술책’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급진전되어 일본도 북한과의 대화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닥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북한과 마주할 시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올려놓아야만 하는 의제 중 하나가 ‘일본인 납치 문제’인데, 현재로서는 “북한이 힘 빠진 아베 정권과 거래하려 할지 의문(일본 언론 관계자)”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납치 피해자 전원이 돌아오는 정도의 메머드급 성과가 아닌 이상에야 떨어진 지지율 반등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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