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귀하고 비싼 염소고기 <사진=이승휴 기자>

트레킹 5일차(21일)이다. 타다파니(2630M)-반탄티(3180M)-고라파니(2860M) 일정으로 3000M까지 치고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는 일정이다. 어렵게 올라갔는데 왜 또 내려와야 하는 걸까? 힘드니 속으로 원망을 슬쩍 보탠다. 마지막 롯지에서 자는 날이다. 다음날 새벽에 푼힐 전망대(3210M)에서 일출 보고 하산해 포카라로 이동하면 된다.

마지막 롯지에서의 밤은 포터와 쿡팀과 모두 모여 작별파티를 한단다. 쿡팀은 틈틈이 만났지만 포터팀들과는 첫날 인사 슬쩍 나누고는 처음 만났다. 파티에 걸맞게 염소를 잡고 염소고기를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닭도 2마리 잡기로 결정했다. 소고기를 안 먹는 대신 염소고기를 먹는 네팔에서 염소고기는 가장 비싸고 귀한 고기다.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염소고기는 노동자 1명의 3-4개월 치 월급에 맞먹는 가격이란다.

그나저나 염소고기는 맛이 어떨까? 생소하고 낯선 경험이라 두려운 한편 설레기도! 부위별로 찜, 백숙, 양념갈비로 요리해 나온 염소고기는 냄새도 안 나고 질기지도 않아 괜찮았다. 새로운 맛에 잔뜩 주눅 든 한두 명 빼고는 다들 맛있게 먹었다.

포터팀과 쿡팀도 한자리에 모여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그들의 전통음악에 맞춰 어설픈 춤을 추며 한바탕 어우러졌다. 무거운 짐을 대신 져준 포터들과 맛있는 음식 먹게 해준 쿠커들에게 더 얹은 팁과 기부금 절반을 줌으로 고마움을 표현한 시간을 끝으로 하루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실 고라파니에서의 마지막 밤 컨디션은 꽝이다. 그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 누워도 잠이 안 온다. 잠이라도 푹 들면 좋으련만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누군가 ‘별 떴다’라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더니 쏟아지는 별은 아니지만 또렷이 보이는 북두칠성을 비롯해 반짝이는 별들이 제법 많다. 별을 못 보고 가나보다 했는데 이렇게라도 초롱초롱 빛나는 별들을 봐서 천만다행이다. 유난히 반짝이는 별들이 많다. 별자리도 모르면서 페가수스, 카시오페아, 처녀자리, 거문고자리 등 들은 풍월 별자리들을 읊어대다 들어왔다.

새벽까지 잠 못 들다 토하고 나니 속은 좀 편해졌지만 머리가 쪼개지듯 아프고 총체적 난국이다. 새벽 5시, 전망대 올라가야 하나마나 고민하다 ‘걷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의견에 따라 나섰다. 푼힐 전망대(3120M)까지는 계속 오르막이다. 이것저것 주는 약 털어 넣고 약 기운에 걸으니 두통은 잠잠해졌다.

떠오르는 일출은 못 봤지만 전망대에 오르니 안나푸르나, 늴리리, 툭체, 다울라기리(8167M), 남봉, 히운출리, 마차푸차레 등이 빙 둘러 전부 보인다. 히말라야 최고의 전망대답다. 안 올라왔더라면 두고두고 후회할 뻔했다. 전망대에 각국 사람들이 다 보인다. 각 나라 사람들 얼굴에서 희망찬 밝음과 뿌듯함이 보인다. ‘나마스테’로 대동단결이다. 지구촌임을 느낀다.

푼힐전망대에서 보이는 다울라기리<사진=이승휴기자>

이번 여행에서 길이나 롯지에서 의외로 포터 1명만을 대동해서 혼자 트래킹을 온 한국 학생들을 만났다. 롯지에서 만난 친구는 27살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취직하기 전 한번쯤 히말라야에 도전해 보고 싶어 왔노라고 말한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온 그 청년의 앞날은 밝으리라고 믿는다. 길을 걷던 도중에 만난 여학생은 여행 16일째라는데 다소 힘든 표정이었지만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활기찼다. 혼자 걷는 길 위에서 느끼는 인생의 참맛을 저 어린 나이에 느꼈을 터이니 그녀의 앞으로의 삶은 ‘사람과 자연에 대한 깊이’를 바탕으로 얼마나 찬란하게 빛날까? 싶어 부럽기까지 했다.

그밖에도 삼삼오오 함께 온 젊은 친구들을 볼 때마다 아들 같고 딸 같아서 괜스레 내 어깨가 으쓱 솟는다. 이것도 편견일지 모르지만 편한 여행지가 아닌 고생스럽고 힘든 여정을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건전한 사고를 가진 청년들이 앞으로의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지겠지? 싶어 안심되고 힘이 난다. ‘대한민국 청년이여, 힘내라’

전망대에서 롯지로 내려와서 아침 먹고 부지런히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내려가는 길이라 오르는 길 보다는 편하긴 했는데 계단 내리막은 징글징글 했다. 무릎 관절에 오는 충격이 이만저만 피로감을 주는 게 아니다. 4시간여를 꼬박 걸어서 티케퉁카에 도착 비빔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는 오로지 비빔국수 먹을 생각만 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사진=이승휴 기자>

원래는 티케퉁카에서 힐레까지 30분 정도 더 내려가서 지프차를 타야하는데 대장의 현명한 배려로 티케퉁카로 지프차를 올라오라고 조처했단다. 멋진 대장님! 긴장이 풀려서인지 점심 먹고 나서는 한걸음 떼어놓기도 힘들었는데 차를 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게다가 차에 오르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내리는 비는 냉기를 몰고 와 차안에 있는데도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얼마만큼 내려와 버스로 갈아타서 포카라로 이동하였다. 포카라까지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던데 체감시간은 3시간도 넘게 걸리는 기분이다. 버스 안에서 뼈마디로 시린 바람이 불면서 오한이 들기 시작하는데 두꺼운 옷을 꺼내 입을 수 없어 내내 오들거렸더니 된통 감기에 몸살까지 겹쳤다.

저녁도 굶고 싶었는데 일행들에게 걱정 끼칠 수 없어 대충 먹고 먼저 쉰다고 양해를 구한 후, 숙소에 들어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몸살감기약 한 움큼 집어 삼키고 죽은 듯이 기절해 잠들었다. 대장이 한국에서 지어온 약이라는데 알약이 10알쯤 들어있는 독한 약이라 기절할 거라더니 정말 기절했다.

이로써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끝났다. 대부분의 트래킹은 나야풀-고라파니-푼힐을 거쳐서 생추어리로 들어가거나, 바로 단타로 짧게 지누단타를 거쳐서 생추어리로 들어가는 코스가 인기가 높다. 최종 목적지는 생추어리 안 깊숙이 위치한 해발 4136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다. 이곳에 가면 360도로 솟아있는 고봉들을 감상할 수 있으나 날이 풀리는 2월말~3월초에는 눈사태 위험 때문에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생초보라 ABC 대신 푼힐 전망대로 만족했는데 천만다행이지 싶다.

퍼미션-안나푸르나 등정기념 증명서도 된다, 안쪽엔 여권사진이 붙여져있다 <사진=이승휴 기자>

하나 더 안나푸르나에 가려면 미리 퍼미션(안나푸르나 허가증, 1인당 2100루피)을 받아야 한다. 미리 받아두려면 여권과 사진 2매가 필요하다. 만약 퍼미션을 만들지 않고 샛길을 통해 몰래 들어가다 잡히면 여행자는 벌금을 물고 가이드와 포터는 감옥에서 몇 개월 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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