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드럭에서의 아침이 밝았다(3일차). 밤에는 흐려서 보이지 않았던 설산이 눈앞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인다. 히말라야 남봉(7219M), 히운출리(6441M), 마차푸차레(6994M) 봉우리들이 차례로 그 자태를 웅장하지만 조용히 드러내고 있다.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느라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비로소 안나푸르나에 왔구나! 실감이 난다. 

왼쪽부터 히말라야 남봉, 히운출리 <사진=이봉신대장>
마차푸차레 <사진=이봉신대장>

안나푸르나는 산스크리트어로 ‘가득한 음식’을 의미한다. 힌두교 풍요의 여신 ‘락슈미’를 상징하는 산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며 다양한 트래킹 코스가 개발되어 있어 전 세계에서 온 트래커들의 집결지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 산군 동서로 각각 제7봉 다울라기리(8169M) 와 제8봉 마나슬루(8165M)가 있는데 이곳 롯지에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초코파이 케이크, 초코파이 봉지가 터질 듯 빵빵함 <사진=이승휴 기자>

이날 아침은 미역국. 일행 중 생일을 맞이한 사람이 있어 쿠커팀에게 미역을 주고 미리 부탁했다. 안나푸르나 롯지에서의 생일 미역국 정말 뜻깊은 생일이다. 저녁에는 초코파이에 초 꽂고 생일 케이크로 축하했다. happy birthday! 

예정대로 8시 출발, 오늘은 종일 걸을 예정이지만 잠을 푹 자서인지 컨디션은 좋다.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는 길이였지만 신비로운 풍경을 만날 때면 ‘반지의 제왕’이나 ‘아바타’ 찍은 장소 같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것도 잠시 끝없이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에 이르면 쥐죽은 듯 침묵수행을 한다. 마주치는 트래커들과의 ‘나마스테’ 인사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그나마 해가 쨍하지 않은 날이라 다행스럽다.

큰나무 밑에서 일행들과 걷는 일행들 <사진=이봉신 대장>

올라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져 발걸음 속도가 저절로 슬로비디오다. 4시간 꼬박 걸어 지누단다 롯지(1780M)에 겨우 도착, 점심 먹고 한숨 돌린다. 출발 당시에는 계곡 아래 온천이 있다 해서 야심차게 목욕준비물을 따로 챙겨서 배낭에 넣었는데 롯지로부터 계곡 따라 20분 내려갔다가 40분 넘게 올라와야 한다는 말에 일동 ‘no’를 외쳤다. 참 잘 맞는 팀이다. 온천 대신 롯지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하고 피자도 주문해서 먹었다. 이 높은 곳에서 피자 주문도 할 수 있다니 놀랍고 신기한데 맛있기까지 하다.

오늘 목표는 촘롱(2170M)까지다. 힘든 여정의 트래킹으로 촘롱에 도착, 슬슬 체력저하와 평상시 체력단련 소홀로 인한 뱃살이 원망스러워지는 밤이다. 도착 직후부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더니 제법 빗줄기가 굵어져 오늘밤도 별은 제대로 볼 수 없으려나 보다.

산속이라 난방시설은 갖춰져 있지를 않아 준비해온 침낭에 팔팔 끓인 물을 보온팩에 넣어 침낭 속에 하나씩 넣고 자면 보온효과 만점이었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더니 종아리에 알이 배겨 아파오기 시작한다. 2000M 넘으니 나뿐만 아니라 한두 명씩 숨이 차서 똑바로 눕기 곤란해지고 속도 울렁거리고 고산 증세가 슬슬 나타나나 보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잤지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잠이 들었다.

롯지 내부모습<사진=이승휴 기자>

4일차(2월 20일). 잠을 푹 못자 컨디션이 별로라 아스피린을 먹었다. 아침 먹고 또 출발, 오늘은 촘롱, 쿠르중, 타다파니(2630M)까지 총 5시간 30분 소요예정이라는데 가파른 오르막길이 있단다. 하루에 해발을 300M씩 높이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는데 500M 높아질 거다. 죽음이다.

가는 길에 학교 한 곳에 들러 대장님이 개별적으로 받아온 후원금 절반을 기부하기로 했다. 하교하던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네팔에서는 손님 접대로 이마에 빨간 가루를 찍어주고 노란 천을 목에 매주어 복을 기원한단다. 눈썹 중간에 찍는 반디는 생명의 기운(차크라)이 모이는 곳으로 ‘직관의 눈’이란 뜻도 있다고 한다. 결혼한 여성을 나타내는 정수리 첫시작점에 찍는 점(sindoor)과는 다른 의미이다.

후원금 전달 증표로 기념사진도 찍고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사탕과 학용품도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남은 것은 선생님께 전달해 드렸다. 심부름 전달이라 잘 전달했다는 의미에서 기념사진을 어쩔 수 없이 찍었지만 얼마나 쑥스럽던지 정치인들은 어찌 이리 쑥스러운 행동을 자연스럽게 잘 하는지 모르겠더라. 기부해주신 최인규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아이들 흑백사진 <사진=이봉신 대장>
아이들 흑백사진 <사진=이봉신 대장>
마을 아이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사진=이승휴 기자>

가는 곳곳에 출렁다리를 만난다. 그나마 출렁다리가 없으면 계곡 밑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가야 하는 길을 대폭 줄여주는 고마운 다리다. 오가며 나귀를 이용해 짐을 옮기는 장면도 본다. 나귀 일행을 만나면 길 한쪽으로 비켜서서 기다려 주었다 걸었다. 나귀들도 한눈팔지 않고 잘 걷는다.

출렁다리 건너는 나귀<사진=이승휴 기자>

산속 마을을 지날 때면 보기에 예쁜 다랑이 밭을 만난다. 네팔인의 80%가 농업에 종사하는데 이 높은 곳까지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는다. 양배추가 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농촌에서는 여자가 훨씬 일을 많이 한단다. 어디가나 가난한 곳에는 여성의 노동착취가 따르나보다.

아이들을 만나서 기운 받고 타다파니(2630M)에 도착했다. 밤마다 어찌나 술들을 마시는지 남을 것 같았던 소주가 바닥났다. 현지 위스키 8848과 럼주에 도전장을 내민다. 8848은 히말라야 높이란다. 럼주 한잔 마시고 술기운에 푹 잠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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