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의 진지한 우정을 그린 수사드라마 '언내추럴'

세상에 자연사따위는 없다? 미녀 배우 이시하라 사토미가 출연하는 <언내추럴>은 억울한 죽음 뒤의 진실을 밝히는 의료수사물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이 밀리면서, 부검 전문 연구소 공익재단 ‘UDI랩(Unnatural Death Investigation Laboratory)’으로 일감이 밀려든다.

이시하라 사토미는 일본 전국에 170명 밖에 안된다는 법의학 부검전문의를 맡았다.  동료 해부의로 이우라 아라타, 임상검사기사로 이치카와 미카코, 기록원으로 구보타 마사타카가 열연하고 있다.

어떤 역이든 무난하게 소화해내기로 소문난 배우, 이시카와 사토미. <사진출처=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이시하라 사토미가 맡은 미스미 미코토는 정의에 불타는 부검의다. 그녀는 매의 눈으로 죽음 속에 숨겨진 억울하고 안타까운 이유를 찾아내며, 늘 공정한 입장에서 문제를 판단한다. 

교내 폭력으로 자살을 한 학생을 앞에 두고 그녀는 “부검의의 소견으로는 자살”이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오랜 폭력으로 인한 타살”이라고 규정한다. 더불어 “가해자들은 이름을 바꾸고 학교를 바꿔서 살아남을 것”이라며 죽음 대신 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모인 UDI랩의 멤버들. 물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다. <사진출처=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교내 폭력과 자살문제는 일본의 큰 사회문제다. 2016년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이지메’ 조사 결과, 초중고 및 특별학교의 이지메 건수는 32만 3800여건에 달해있다. 특히나 초등학교가 그 중 23만 7900여건을 차지해 전체의 57%나 된다. 각 학교들은 스쿨 카운셀러를 배치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20일에는 자기반 학생이 따돌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귀찮아서 주의하지 않았다”고 발언한 담임교사가 신문 기사로 보도되었다. 피해학생은 초2인데, 2년내내 등교거부 중이다.

일본에서는 몇 년전부터 “도망치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지메를 당하면 일단 도망쳐라, 회사가 장시간 근무를 요구하면 몸이 망가지기 전에 도망쳐라, 정신건강을 해롭게 하는 인간관계에서 도망쳐라. 인내가 최고로 여겨졌던 사회가 더이상의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인간이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언내추럴>은 지속되는 학교 폭력이라는 일본 사회의 암흑과 더불어, 도망치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했다.

UDI랩의 멤버들. 소장 카미쿠라 역의 '마츠시게 유타카', 부검의 나카도 역의 '이우라 아라타', 부검의 미스미 역의 '이시하라 사토미'. 기록원 구보 역의 '구보타 마사타카'. 임상검사기사 유코 역의 '이치카와 미카코'. <사진출처=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반영한 이 드라마는 성폭행 문제에도 도전했다. 미스미 미코토의 동료인 유코는 파티에서 만난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작스런 졸음을 느끼고, 그 후로 기억을 잃는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침대에 파티에서 만난 남자가 사망해있다. 들이닥친 경찰들은 유코에게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당한 일이라고 말한다. 남자와 함께 술을 마셨으니 당해도 싸다는 식이다. 정신을 잃었던 유코를 경찰들은 범인으로 몰고 간다. 미스미만이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었건, 남자와 술을 마셨건 유코의 인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유코를 범인으로 만들 수 없다고 부정한다. 미스미는 유코를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다.

이 스토리는 모 방송국 고위인사와 사진기자인 이토 시오리 간의 강간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뉴욕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던 이토 시오리는 우연히 일본민영방송국 워싱턴 지국장인 야마구치를 알게 되었고, 일본에 오면 일자리를 주겠다는 야마구치와의 약속을 믿고 일본으로 와, 야마구치와 식사를 하게 된다. 식사 후 이토 시오리는 정신을 잃었고 새벽에 일어나 보니 벌거벗은 상태로 야마구치와 함께 침대에 있던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가 정신을 잃은 채로 호텔까지 가게된 것을 택시운전기사도 알고 있으며, 호텔주변 감시카메라에도 찍혀있다. 그러나 야마구치는 기소되지 않았고 이토 시오리는 잠자리까지 가졌는데 일자리를 얻지 못해 고발한 ‘꽃뱀’이라는 2차 피해까지 당해야 했다. 드라마처럼, 이토 시오리의 부당함을 밝혀줄 법의학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서로를 아끼는 유코와 미스미. 여자들의 우정이 얼마나 돈독한지를 내내 보여준다. <사진출처=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누구나가 이 드라마를 보고, 이토 시오리를 떠올렸고, 미스미와 유코의 우정에 눈물을 흘렸다. “여자의 적은 여자”로 치부되는 가운데, 유코의 억울함을 밝히려고 뛰어나닌 미스미와, 사건이 해결된 후 술 한 잔을 마시며 회포를 푸는 두 여인을 보며, 일본의 여성들은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이토 시오리의 사건을 보면서, 2차 피해를 두려워하며, 더이상의 목소리를 내지 않게 되었다. 일본에 미투 운동의 불길이 치솟지 않는 이유는, 성희롱과 성폭행이 존재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도움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해서이다. 도움받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에 목소리 내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미스미와 유코의 메시지는 작지만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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