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의 ‘호러’ 러브 스토리 'きみが心に棲みついた'

'네가 내 마음에 자리잡았다(きみが心に棲みついた)'는 텐도 기린의 만화로 2011년부터 연재중에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학대를 당하고 자란 주인공 ‘오가와 교코’는 대학 시절, 선배인 ‘호시나’를 사랑하지만, 선배는 그녀의 학대당한 과거를 도닥여줌과 동시에 그녀에게 혹독한 절망감을 맛보게 한다. 스토리는 ‘교코’가 근무하는 속옷 회사에 ‘호시나’가 상사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이미 교코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만 호시나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면 신경이 쓰이고, 호시나가 자신을 지배하던 학창시절로 차라리 돌아가고 싶어진다.

텐도 기린 작 만화 '네가 내 마음에 자리잡았다(きみが心に棲みついた)'의 표지 <이미지출처=드라마 공식홈페이지>

교코는 드라마 대사에도 있듯 ‘걷잡을 수 없는’ 캐릭터다. 울다가 웃는가 하면 고민을 상담하다가 갑자기 뛰쳐나가 회사로 가서 일을 시작하고, 요시자키를 좋아한다고 그렇게나 따라다니더니 갑자기 호시나로 마음을 돌린다. 교코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전형적인 캐릭터다. 그래서 항상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며, 자신이 없어서 무슨 일을 해도 벌벌 떨고, 누가 행여 말을 시키면 눈도 못 쳐다볼 정도다. 다만 그녀는 일에서만은 두각을 나타내는데, 갖은 노력을 하며 원단을 찾아온다.교코를 요즘 가장 잘나가는 신인 배우 ‘요시오카 리호’가 연기하고, 호시나 역을 ‘무카이 오사무’, 교코가 좋아하는 출판사 편집자 ‘요시자키’를 기리타니 겐타가 맡았다. 기리타니 겐타는 워낙 호방한 캐릭터로 인식되어 있지만, 요시자키 역을 통해 여성팬의 마음을 쏙 사로잡으며,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이 드라마는 평범한 연애 드라마가 아니다. 교코와 호시나는 폭력으로 얽힌 관계 속에 있다. 호시나는 교코를 억압해 자신의 꼭두각시로 삼고자 한다. 대학 시절에는 교코를 협박해 스트립쇼를 하게 했으며, 교코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목을 졸라 상처를 남긴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이런 장면을 보고 불쾌감을 표현했다. 도저히 연애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을, 마치 사랑으로 포장한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교코에게는 자신에게 눈꼽만큼의 관심을 보여주는 호시나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 평생 호시나의 말을 듣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호시나 역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는데, 그는 가짜 자신감으로 도배를 하고 일단 자신의 외모와 수려한 말로 사람들을 지배하며 사는 인물이다. 마력의 카리스마로 모든 이를 쉽게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 모든이의 사랑을 받지만, 타인에게 냉혹하며, 자신과 비슷하게 살아온 교코를 괴롭히면서도 그녀를 놓아줄 수가 없다. 

교코에게 물리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지만 교코가 벗어날 수 없는 남자 호시나 역의 무카이 오사무(왼쪽). 교코를 지켜주는 요시자키 역의 기리타니 겐타(오른쪽) <사진출처=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이것은 사랑일까? 어떤 이들은 이를 ‘공의존’이라 부른다. 병적인 인간관계다.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기 위해 때로는 폭력을 휘두르고, 거기 복종하기도 하는 관계를 말한다. 

교코와 호시나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에 아무도 그들을 돕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학대하고 학대당하는 일을 통해 관계를 맺어간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교코는 자신의 목을 조르는 호시나를 경찰에 신고하거나, 회사에조차 알리지 못한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거나, 털어놓을 사람이 없는 것. 그 역시 교코와 호시나의 공통점이다. 교코는 피해정황을 숨기기에 급급하고, 호시나는 자신의 폭력성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주인공은 전문가나 친구에게 상담조차 하지 못한다. 이 드라마는 연애물이다. 그러나 연애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바로 그것이다.

오랜 기간 학대를 당한 탓에 학대와 사랑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교코(왼쪽) 역의 요시오카 리호. <사진=드라마 공식 홈페이지>

일본을 요코하마 대학교 명예교수였던 사회학자 나카니시 신타로는 일본사회를 ‘단절사회’라고 말한다. 고도경제성장만을 바라본 일본은 가정내의 부부평등을 실천하지 못했고,더불어 부모와 자식세대가 적절한 소통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현대 사회의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점은 드라마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교코도 호시나도 가정에서 버림받았고 잘못 잠근 첫단추는 인생을 내내 나락으로 이끈다.

지난주 잡지 <주간현대(슈칸겐다이)>는 일본 10대들이 자신들의 고민을 아무에게도 상담할 수 없는 것이 일본의 과제라고 보도했다. 미츠비시UFJ리서치&컨설팅이 2014년 전국 1200명의 중고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고교생의 41%, 중학생의 20%가 아무에게도 상담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부모도 교사도 일과에 치여서 상담을 받아줄 여유가 없고, 아이들끼리는 서로 부끄러워서 숨기게 된다. 교코처럼 회사에서 일로 인정을 받고 친한 동료가 생겨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못하며, 호시나의 폭행사실을 숨신다.

22일 서일본신문은 일본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힘겨운 점을 모두 인터넷에 털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위말하는 이지메를 당해도, 혹여 피치못할 사정에 임신을 했을 때도 공부에 대한 불안감도 인터넷에만 털어놓는다. 겉으로는 호시나처럼 웃으면서 실은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피곤해하거나 힘들어하면 ‘KY’(분위기를 못 맞추는 사람)으로 찍히게 된다.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당하는 불이익을 인터넷에 털어놓는다. 모 파견사원은 자신이 회사에서 어떤 차별을 받았는지를 트위터에만 적어 문제가 되었고, 과로와 상사의 압박으로 못숨을 끊은 일본 대형광고회사 직원도 인터넷에만 불만을 털어놓았다. 현실에서는 아무에게도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교코는 호시나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다. 실제로 죽음을 불러올 수 있음에도 말이다. 미국드라마라면 호시노는 당장에 체포되었고, 정신감정을 받아, 병원에 수용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에겐 정신병 이력이나, 담당 의사가 있어 마땅하다. 그는 사이코패스적 캐릭터다. 그런데 일본드라마에선 이 두 남녀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커플 정도로 그리고 있다. 폭력은 사랑일까? 결코 아니다. 폭력도 사랑일 수 있다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데다가 인간관계까지 단절된 일본사회는, 어떤 면에선 도저히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끔찍한 미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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