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기(長周期) 지진’, ‘자택 피난’ 등 새로운 개념 속속 등장

“양쪽을 잡는 것 보다 한쪽을 잡는 게 힘의 분산을 막아 안전합니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직후였지만 막상 아래위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진동은 머리로 판단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흔들림을 감지한 순간, 두 다리로 서 있을 수 없어 주저앉고 말았다. 테이블 아래에 몸을 수그려 앉은 후 손으로 양쪽 테이블 다리를 꽉 붙잡았다. 약 20초간에 걸쳐 몸으로 체험한 진도 7의 위력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강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도 한동안 속이 메슥거렸다.

3일 동경임해광역방재공원에서는 이처럼 강진(强震)을 직접 몸으로 느껴보는 코너 외에도 지진 경험자의 체험담을 나눌 수 있는 각종 체험 행사가 열렸다. 지진 대국 일본은 지금, 어떤 새로운 방재 대책들을 고안 중일까.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기존의 관념을 뛰어넘어 보다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대비책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도쿄 아리아케(有明) 소재 동경임해광역방재공원의 강진 체험 차량 <사진=최지희 기자>
기상청 및 소방청 관계자, 대지진 경험자가 참가한 체험담 나눔 행사 <사진=최지희 기자>

대표적인 담론으로 고층 건물의 흔들림에 초점을 맞춘 ‘장주기(長周期) 지진’, 자신의 집에서 안전하게 대피하는 ‘자택 피난’ 등이 있다. 이날 열린 지진 체험담 나눔 행사에서도 화두는 ‘장주기 지진’이었다. ‘장주기 지진’이란 큰 지진이 발생할 경우에 생기는 주기(한번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가 긴 진동으로, 주로 도심의 높은 건물 안에서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고층 건물에서도 장시간에 걸쳐 흔들림이 감지되기도 한다. 실제로 3・11 도호쿠(東北) 대지진 발생 당시 도쿄의 빌딩에서도 십 분 이상 흔들림이 감지되기도 했다.

장주기 지진의 경우 건물의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흔들림이 심해져 피해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진도만으로 진동을 표시해왔지만, 지상과 고층 빌딩에서 느끼는 진동은 매우 다르다”며 장주기 지진 개념 도입의 이유를 설명했다. 먼 곳에서 발생한 지진이 전달되어 오기까지 1분 이상의 준비 시간이 생길 수 있어, 사전에 대비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연안 지진 발생 시 도쿄 빌딩 실내 모습 <‘장주기 지진’ 안내 책자 중에서>

‘자택 피난’도 새롭게 떠오르는 개념 가운데 하나다. 도쿄 내에서 중소형 아파트 등 공동 주택에 거주하는 세대는 전체의 70%에 이른다. 대지진 발생 시 주민들이 일제히 피난소를 찾아 이동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엄격한 내진 설계에 따라 건설된 아파트에 머물며 피난하는 ‘자택 피난’ 방법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파트 거주민이 자택에서 피난함과 동시에 자택 피난이 어려운 피난민들을 함께 수용하는 방안이다. 

세대의 약 90%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도쿄 주오쿠(中央区)는 방재 계획의 일환으로 자택 피난을 기본 방침으로 내걸었다. 각 층 별로 대표를 선출하여 안부 확인을 하는 정보반, 이재민에게 밥을 지어 돌리는 물자반 등을 편성해 대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집집마다 내부 구조가 다르다는 점, 피난 인원을 정확히 집계할 수 없다는 점 등 보완해야할 사항도 많다. 따라서 자택 대피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시민과 전문가들이 모여 효율적인 방안 마련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한반도 역시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지진을 잘 견디는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지진 발생 시 대처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준비하고 맞이하는 것과 갑자기 맞이하는 것의 차이가 생사를 가른다’던 3・11 도호쿠 대지진 경험자의 체험담이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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