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의 세월을 넘어 100만부 돌파···인기의 비결은

“저 책 읽어볼까? 그렇게 재밌나?”

“만화책이니까 읽기 쉬워서 많이 팔리는 거 아닐까”

도심 대형 서점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른바 명당에 위치한 만화책을 지나치며 2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말했다. 잠시 후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여성이 책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1월 5일, 만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가 발매 4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흥행작 부족으로 어려움에 처한 일본 출판업계를 달궜다. 저명한 아동문학가 요시노 겐자부로(吉野源三郎)에 의해 1937년 출판된 소설이, 80년이 지난 지금 만화로 돌아와 오늘(1월 21일 주간 집계)까지도 판매부수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점 단독 부스에 진열된 만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실제로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8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와 닿는다는 목소리가 많다. “책을 읽어보니 지금 청춘의 고민이나 그 때의 고민이나 똑같은 것 같다(26살 남성)”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이 만화책을 선물하고 싶다(29살 여성)”,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사줘서 읽은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만화책으로 다시 읽을 수 있어서 반갑다(80대 여성)”   

한국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복귀작으로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작품의 구조는 심플하다. 주인공 코페르 군과 그의 훌륭한 조언자인 삼촌이 집단 따돌림 문제, 빈곤, 격차 등을 주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80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띈다.

만화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데 80년이 지난 지금, 이토록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을 살펴보면 현재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2012년 12월부터 시작된 경기 확대는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뛰어 넘어 전후(戰後) 두 번째로 장기간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작년 한해 국내총생산(GDP)은 7사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보였고, 닛케이 평균 주가는 26년 만에 버블 붕괴 이후 최고치를 갱신했다.

높은 취업률로 일하고 싶은 사람 대부분이 일자리를 찾는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국민의 체감 경기는 정부가 발표하는 장밋빛 수치와 거리가 멀었다. 일본 국민 대부분이 ‘경기가 좋아졌다는데 실감이 안 난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의 불안감은 더한 상황이다. 2017년에 발간된 ‘소비백서’를 보면, 젊은 층일수록 소비에 신중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84년에 비해 ‘사용할 수 있는 돈 가운데 실제 소비하는 비율’이 전 연령에서 평균 7.8% 감소된 76.8%를 보인 가운데, 25세 미만은 11.9% 감소한 76.8%, 25~29세는 10.9% 감소한 79.0%, 30~34세는 13.3% 감소한 73.8%였다. 취업률은 증가했어도, 은퇴 후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고용 환경은 점점 줄어드는 ‘불안정 고용’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본의 젊은이들

원작자의 아들인 요시노 겐타로(吉野源太郎)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흥행의 이유에 대해 “앞날이 불투명한 지금의 시대와, 전쟁을 향해 달리던 당시의 불안정성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라고 내다봤다.

한편 “80년 전과 지금은 ‘국민보다 국가가 중시되는 전체주의 시대’라는 공통점이 있다(@yMIKATAnoMIKATA)”는 날카로운 지적도 눈에 띈다. 헌법 9조 개정 움직임을 비롯하여 갈수록 우경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그간 국민의 노력으로 지켜 온 평화, 인권 등의 기본 권리 침해에 대한 우려 또한 책의 흥행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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