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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가면, 그림 속 주인공을 만날 수 있다도리츠다이가쿠(都立大学)역 상권 살리기 프로젝트를 엿보다
2018.01.18 | 최종 업데이트 2018.01.19 22:03 | 도쿄=최지희 통신원

“상품은 어디든 비슷하니까요. 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뿐이죠.”

가업을 이어 이곳 도리츠다이가쿠(都立大学)역 인근에서 40여 년 된 차(茶) 전문점 오사카야(大阪や)를 운영하는 미무로(三室) 씨. 그의 손에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책자 세권이 들려있었다. 따뜻한 파스텔 색감의 표지에 그려진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는 어른은 물론 아이들의 시선을 끌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책장을 넘기자, 한 면 가득 일러스트가 펼쳐졌다. 페이지별로 소개된 인물 모두가 그림책의 주인공들이었다. 책자마다 약 열 명에서 스무 명 안팎의 가게 주인들이 각기 다른 스타일의 일러스트로 등장하는 ‘도리츠징(都立人)’은, 도리츠다이가쿠의 새로운 명물이 되었다.

본인이 운영하는 차 전문점 오사카야(大阪や)에서 책자를 소개하는 미무로(三室)씨 <사진=최지희 기자>

여자 친구를 찾고 있는 생선 가게 마쨩, 서핑 후 밤부터 일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바(bar)를 경영하기에 적격이라는 우라라쨩. 남편과의 첫 데이트 장소가 쥐라기 공원이었다는 편의점 점장 키쨩. 일러스트에는 인물과 함께 그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이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그림 속 마쨩, 우라라쨩, 키쨩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도요코선(東横線) 도리츠다이가쿠역에는 모두 6개의 크고 작은 상점가들이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 지유가오카(自由が丘), 나카메구로(中目黒), 그리고 시부야(渋谷)까지 거대 상권들이 즐비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은 도리츠다이가쿠 상점가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유명 상권과 경쟁하며 마을을 살리기엔 6개 상점가가 각각 활동하는 것으로는 턱도 없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상품을 제공하는 가게가 있어도, 요즘 시대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화제성이 없으면 뒤쳐지고 만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총 3권의 ‘도리츠징’이 발간되었다. <사진=최지희 기자>

이로써 시작된 ‘도리츠징’ 활동은 이제 그들만의 방법으로 타 상권과의 차별화를 꾀하며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14년 12월 첫 책자가 나오기까지, 6개 상점가의 30~40대 젊은 경영인들이 오랜 기간 함께 모여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었다. 처음 상점회 측이 필요로 한 것은 가게들을 소개하는 가이드북이었다. 하지만 상점과 상품 정보를 일률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없었다. 주변 상권들이 지니지 못한 도리츠다이가쿠만의 개성을 충분히 알리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의 특징을 살린 일러스트와 함께 취미와 관심사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도리츠징’에서는 상점 외관이나 상품 정보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각기 다른 일러스트 작가가 직접 가게를 방문해 주인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한 그림과 글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발간한 총 세 권의 ‘도리츠징’에는 59명의 일러스트 작가가 담아낸 59군데의 가게 주인들이 소개되었다. 전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었기에, 개인 상점과 체인점 등의 구분은 필요하지 않았다. 개성 있는 그림과 애정 어린 소개 글 덕분에 해를 거듭할수록 반향도 커졌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곳곳에서 ‘도리츠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10월에 발간한 세 번째 책자는 5천부가 모두 소진되어 증쇄를 계획 중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이곳 상권의 사람들 100명을 소개하는 것이 목표다.

책자 발간 이외에도 가게 주인들의 특기를 살린 강좌를 개설하는 방법으로 지역 주민들과 교류하는 ‘도리츠 대학’ 프로그램, 퀴즈를 풀거나 스탬프를 찍으면서 상점가를 거니는 이벤트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역 이름인 ‘도리츠다이가쿠(도립대학)’를 본떠 지역 상권 일대를 ‘도리츠 대학 캠퍼스화’ 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꽃집(우측 사진)에 가면, 오키나와 전통 현악기 산신(三線)을 연주하는 모코쨩(좌)을 만날 수 있다. <사진=최지희 기자>

‘도리츠징’ 활동의 기획과 홍보를 담당하는 미무로 씨는 “도리츠징 책자를 들고 가게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며 그간의 변화를 소개했다. 평소 가게를 즐겨 찾던 손님들도 가게 주인의 면면을 새로이 알게 되며 반가워했다. 또한 도리츠징을 계기로 자연스레 교류회가 열리면서 상점들끼리 친목을 도모하는 기회도 생겨났다. ‘도리츠징’이 가게를 찾는 손님과 가게 주인, 그리고 가게와 가게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된 것이다.

고도의 자동화와 함께 연일 새로운 무인점포 소식이 귀를 간지럽히는 가운데, 그 반대편에서 ‘사람’을 전면에 내세운 ‘도리츠징’의 활동은 이목을 끈다. 가게의 간판이나 물건들을 떠올리기에 앞서 그곳에 가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은, 어쩌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그 무엇일수도 있다.

도쿄=최지희 통신원  ohayou_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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