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실적올리기 급급···'공적' 매매 의혹도

무역업을 하던 A씨는 사업실패로 10억원이 넘는 막대한 채무를 지게됐다. 이로 인한 가정 불화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지난 5월 경, 지인 B씨의 배달 심부름을 제안받았다. 물건을 건네주기만 하면 100만원을 주겠다는 그의 말이 꺼름칙했지만, 한푼이 아쉬었던 A씨는 이 제안을 수락했다.

B씨가 소개한 C씨와 함께 강서구 화곡동 소재 한 건물로 차를 이용해 이동한 A씨는 차안에서 C씨로 물건을 건네받고 내용물을 확인할 시간과 여유도 없이 배달 장소인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곳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마약수사계 소속 형사들이었다. 그는 현장에서 필로폰 소지 혐의로 긴급체포돼 구치소에 수감됐다. 근처 커피숍으로 이동해 A씨를 기다리던 C씨도 함께 연행됐다. 현재 A씨는 필로폰 100g소지, 알선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 제보자가 지명한 경찰의 작업장 자리에는 오래된 간판이 붙어 있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모습은 거의 눈에 띄질 않는다.

A씨는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 없지만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서울 구치소에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조금이나마 낮은 형량을 선고받길 기대하면서다.

밀수전과는 있지만, 마약 전과나 투약 경험이 없던 A씨는 졸지에 마약사범이 된채 수감생활을 이어 오던 중, 검거된 장소에서 '함정수사'로 구속된 경험이 있다는 마약사범을 만났다. 구치소내 다른 마약사범들에게 확인한 결과, 해당 장소는 경찰이 마약사범 검거에 종종 이용하는 '작업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법원은 함정수사를 '기회제공'과 '범의유발'로 구분 짓고 있다. '기회제공'은 범죄를 저지를 생각을 이미 갖고 있던 사람에게 수사기관에서 기회를 제공해 범죄를 저지르게 한 뒤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범의유발'은 범죄를 하려고 하는 생각이 없었으나, 수사기관에서 유혹해서 범죄를 저지르게 한 뒤 붙잡는 것을 의미한다. 대법원은 '범의유발'을 통한 수사는 함정수사로 봐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단순 '기회제공'의 경우엔 함정수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한 마약 전문 변호사는 "경찰의 마약 수사는 함정수사로 볼 수 있는 '범의유발'과 '기회제공'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0년 전 전북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는 마약을 끊은 전과자에게 마약 살 돈을 대주고 여자까지 동원해 함정수사를 벌였었다. 1심은 해당 전과자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함정수사를 통한 기소는 무효라며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도 원심을 확정하며 "히로뽕을 구입·투약할 의사가 없었는데 경찰의 계략에 의한 함정수사로 범죄가 유발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A씨의 사건도 이같은 '범의유발'과 '기회제공'의 사이에서 다툼의 여지가 많아 보인다. 이 뿐만이 아니다. A씨의 사건은 '공적(마약사건 연루자가 마약사건 해결에 적극적인 제보나 도움을 줬을때 그 역할을 인정해 양형시 참작하는 것)' 매매 의혹마저 제기된 상태다.

1만여 명이 동시에 투약(1회 투약분 0.03g, 경찰 계산법)가능한 필로폰 100g은 시가로도 약5천~7천만원(1g 50~70만원)상당에 달한다. 최근에 구속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아들이 밀반입한 양이 4g인 것을 보더라도 필로폰 100g은 보기드문 분량인 셈이다. 물론 경찰이 필로폰 10g이나 20g 정도를 소지한 판매상들을 검거하는 일도 종종 있지만, 100g 소지혐의는 그리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약 전과가 없고, 생활고를 겪고 있던 A씨가 필로폰 100g을 들고 경찰이 기다리고 있던 사무실로 배달을 갔다는 것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이 사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마약중개상(46)은 "마약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폴리바겐(사전형량조정제도)'이 인정되는 만큼 마약사건에 연루된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라면 유능한 변호사를 고용해 '공적(?)'을 사서 왠만해선 실형을 살지 않는다"며 "뽕(필로폰) 바닥에 대해 조금만 알면 별로 놀랄 일도 아니고, 이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적 매수는 검찰, 경찰, 변호사, 마약상 등이 모두 하나의 커넥션으로 연결돼 있다"고도 주장했다. 

만약 그의 주장대로라면, 이번 A씨 사건은 공적을 올리기 위한 함정수사일 개연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즉, 마약사건에 연루된 자의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함정수사로 경찰은 실적을 올리고, 누군가는 실형을 면하거나 감형받는 사이에 생활고에 마지못해 마약 배달에 관여한 A씨는 2년 전후의 형을 살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경찰 관계자는 특정지역의 작업장 여부는 부정하면서도 (함정)수사 기법에 대해선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마약범죄의 특성상 적극적인 수사기법인 기회제공형의 함정수사의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경찰이 눈앞의 실적에 급급해 이같은 수사기법을 남발하여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쯤 돌이켜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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