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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차별 없어도 수능은 계속될까?
2017.11.21 | 최종 업데이트 2017.11.21 11:40 | 이승휴 기자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포항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생겨났다. 수험생이 60만이 넘으니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치면 240만 명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셈이다. 거기다 친인척, 친구, 이웃의 숫자까지 합하면 약300만 명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본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올 고3 수험생인 ‘1999년생의 수난사’가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신종플루, 메르스, 세월호 등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고, 교육과정 개편으로 역사를 배우지 못했으며, 마침내 지진으로 인한 수능연기까지 불운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수능연기가 처음이라 그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는 셈이다. 대학졸업생 수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미친 교육열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수능연기는 큰일임에는 분명하다. 대학 가기 전까진 대학만 들어가면 황금빛 미래가 보장되리라 믿었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대학 들어가도 졸업 후 취업준비생 과정이 기다릴 뿐 아무런 미래가 보장되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우린 여전히 유치원, 초등, 중등, 고등, 대학 교육 코스를 순서대로 밟고 있을 뿐이다. 나방들이 불빛을 향해 타죽을지도 모른 채 날아들 듯이 미래에 아무런 해답이 없는 대학문을 향해 날아든다.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걸까?

학력차별이 평생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을 내내 보아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학력차별이 곧 임금격차로 이어지고 살아가는 내내 꼬리표처럼 붙어서 내가 인식하든 안하든 존재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전히 그 길 이외에는 어떤 다른 길이 있는지 알아볼 여력도 없이 대물림하면서 걸어가는 것이다. 채용, 승진, 결혼 등등에서 학력차별이 존재하는 한 교육제도의 변화를 아무리 꾀한다한들 별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프로야구 선수를 뽑을 때 학력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야구를 잘하는지만 평가해 보면 된다. 결혼할 때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결혼해서 평생을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판단만 하면 되는 것이다. 청소 용역업체에서는 청소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각 영역의 인재들이 숙달될 때까지의 기간, 노력, 사회기여도, 대체능력도 등을 판단하여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 비슷한 임금수준으로 그 차별이 별로 없다면 지금처럼 누구나 대학시험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들 진 않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무릇 교육이란 무엇일까? 교육이란 동양고전 철학에서 주역으로 풀면 몽(蒙)괘로 풀이된다. 몽은 무성하게 자란 풀에 의해 덮여있는 모습을 뜻하는 글자인데 사물이 태어나 아직 어릴 때는 몽매하기 때문에 ‘어리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몽매한 어린아이를 교육시켜 계몽하는 방도에 대해 설명하는 괘이다.

하지만 주체는 어른이 아니라 어린아이이다.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배우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닌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교육자의 능동적인 의지와 절실한 마음가짐임을 몽(蒙)괘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하고 있다. 어른이 어린아이에게 무조건 배우라고 명령하고 강조하고 끌어당기면 그것이 교육이 되는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학업성적만 높일 수 있다면 인성 따위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괴물들을 만들고, 하나에서 열까지 대신해 사회성이란 눈곱만큼도 없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교육이 바로서야 사람이 바로 서고, 사람이 바로서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개인의 삶도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삶의 행복지수가 OECD 국가 중 2011년 24위에서 꾸준히 하락해 2017년 발표에서는 32개국 중 31위로 떨어졌다. 심각하게 생각해보야 하는 대목이다.

맹자에서는 ‘물망물조장(勿忘勿助)’이라 하여 ‘잊지도 말고 조장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하여 가르치거나 키우는 교육이 아니라 묵묵히 지켜봐주는 기다림의 중요성을 말했다. 교육의 중심은 학생이고 존중과 믿음으로 지켜봐주고 바라봐주는 것이다. 스스로 깨닫고 알아갈 때 비로소 교육의 즐거움과 깨달음이 있어 효과가 나타나는 법이다. 자율성과 자발성을 담보하지 않는 한 그 교육은 죽은 교육이 될 뿐이다.

누구나 다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다. 누구는 게임을 잘하고 누구는 노래를, 그림을, 만들기를, 요리를, 운동을, 악기를 등등 어려서부터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그쪽으로 꿈을 키우고 개발하고 전문화하는 그래서 어느 쪽으로 편중되지 않게 하는 것으로 다양화 한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지 않을까 싶다.

교육의 주체가 바로 서고 각자가 원하는 공부를 선택적으로 즐겁게 하고 학력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모든 학생들이 일시에 수험장에서 시험을 치루는 수능대란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수능이 연기된 일주일. 마음이 괴롭고 착잡할 수험생과 가족들이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힘내는 기간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승휴 기자  tmdgbtkfk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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