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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EBS 영상인 ‘암소와 호랑이의 사랑’이란 동영상을 보았다. 암소와 호랑이가 어떻게 사랑을 하지? 했던 궁금증은 곧 풀렸다. 호랑이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생고기를, 소는 가장 싱싱하고 맛있는 풀을 각각 사랑의 징표로 준다. 너무나 서로 다른 암소와 호랑이 각자의 사랑방식을 통해 ‘사랑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란 메시지를 담았다.

너무 쉬운 내용인데도 우리는 자주 암소와 호랑이의 사랑표현법을 사랑이라 여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 내가 가장 기쁜 때를 상대방이 좋아하고 행복하고 기쁜 때라 착각한다. 암소는 호랑이의 입장에서, 호랑이는 암소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꼭 내가 좋은 것이 상대방도 좋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부모님의 일방적인 자식사랑의 잘못된 폐해도 자주 접하곤 한다. 지난 7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수도권의 한 사립학교 교사(여, 53)가 아들의 생활기록부를 조작해 아들 A군(19)은 지난해 수시모집에서 서울 소재 사립대학 보건계열에 합격했으나 합격취소 통보를 받았다. 잘못된 아들 사랑의 전형이다.

자식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공문서 조작까지 해서 대학에 보내놓으면 나중에 고맙다고 할까? 아마도 ‘당신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는 원망만 들을 것이 뻔하다. 자식이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른 채 사회적 잣대로 행복을 재단하는 부모님의 일방적 사랑은 폭력일 뿐이다.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종종 아니 자주 ‘주관적인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두기는 꼭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나는 물론 상대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나와 같음과 다름을 알아챌 수 있고 소유나 구속이 아닌 이해와 배려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적당한 거리두기가 깨지면 사랑이라고 믿었던 관계가 행복을 주기는커녕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행복한 것,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등이 모두에게 정답일 수 없다. 각각의 위치와 생각과 자라온 환경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음을 늘 생각해야 한다. 일방적인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에 갈등과 분쟁이 일어난다. 다른 가치관에 대한 관용과 배려, 포용성이 있을 때 사람은 성숙해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애완견에 물려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외출 시 목줄과 입마개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그러나 애완견을 기르고 있는 많은 견주들이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라는 말들을 한다. 개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견주들의 입장에서는 사랑스럽고 순둥이겠지만, 개를 좋아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위협을 느낄 정도의 공포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 개는 안 문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잘못된 애견사랑일 뿐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자기중심적 잣대로 타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점점 다양해지는 상황만큼이나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사고로 내가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좋은 것인지 먼저 살펴볼 일이다.

호랑이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 암소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 아닌 것처럼, 부모의 입장에서 잘된 것이 자식의 입장에서 행복한 것이 아닌 것처럼, 견주의 입장에서 안무는 개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개가 아닌 것처럼 각자의 입장에서 종은 것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일 수 없다.

경직된 사고와 배타적 견해는 버리고 ‘입장 바꿔 생각해 보는’ 사고의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사랑의 본질은 ‘내가 아닌 너’에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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