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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여기서 화(和)란 다름을 존중하는 열린 태도를 일컫는 것이고, 동(同)은 같은 것을 추구하는 닫힌 태도를 말한다. 따라서 군자는 화합을 이루고 소인은 선동을 해서 부화뇌동을 일삼는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옛 성현들이 깨달은 바를 우리들은 아직도 그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동(同)’만을 추구해서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는커녕 적으로 규정하고 배타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소인배 무리가 가장 많은 국회에서는 同만을 추구하여 ‘和’를 말하는 사람을 정치적 붉은 딱지를 붙여 몰아붙이고 여전히 내편 네 편만 있지 국민의 편에서 바르게 의견을 수렴하고 다듬어서 입법 활동을 하는 군자의 도리를 지닌 국회의원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자본주의는 이미 다원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표방한 이상 절대 단일민족일 수 없는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와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과연 우리들은 다름을 인정하고 그네들의 문화를 알려고 노력하는 和의 태도를 취하는지 궁금하다.

최근 외국인과 함께 하는 TV프로그램들이 부쩍 많아지는 추세다. 거리에서도 외국인들이 많아졌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에 대한 이미지와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또는 그 반대로 우리가 외국에 나가 외국인을 대할 때의 태도 등등을 상호교류 교감하면서 좋은 점은 배우고 낯선 점은 이해하고 다른 점은 인정하는 和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취지였음 한다.

얼마 전 장애인 학교 설립을 위해 무릎 끓었던 장애인 엄마의 기사처럼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여전히 심하다. 만나면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을 통해 동문, 동향, 동년배, 동 종교 등등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같은 것을 추구하면서 친밀함을 돈독히 하고 그 울타리 안에 들지 않으면 배타시키기 급급하다.

그래서 여전히 왕따가 존재하고 잘못인지 알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리에서 벗어날 수 없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한다.

정영근 교수(서울과학기술대)는 “주례사를 딱 한번 했는데 보통 주례사에서 부부는 일심동체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일심동체란 말은 삼하게 얘기하면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폭력을 인정하라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서로가 다른 사람인데 어떻게 일심동체가 되란 말인가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살아가라고 했습니다.”며 和의 중요성을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름지기 ‘서로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면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잘못이나 모자람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단칠정론으로 논쟁을 벌였던 이황과 기대승의 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8년간 왕복편지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면서도 나이차나 벼슬의 고저에 구애받지 않고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和를 추구한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는 일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잘못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정당화시키려 들고 온갖 감언이설로 합리화 시키면서 서서히 잘못이 아닌 걸로 둔갑하는 예를 많이 보았다. 잘못했을 때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면 그 순간부터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데 말이다.

지식이란 차이를 아는 것이라 하였다. 차이를 알기에 적어도 스스로 지식인이라 생각한다면 다양하고 균형적인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겸손하게 다스리는 것이 同만을 추구하지 않고 和하려고 노력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군자는 되지 못할지언정 스스로 소인배는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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