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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국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 가부장적 남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김갑수(이신모 역)씨가 국민 욕받이로 등극했다. 남편의 현실적인 리얼리티가 적나라하게 살아있어 시청자들이 욕을 해대며 스트레스를 풀면서 시청률이 상승하고 있다. 당하고 살던 김미숙(홍영혜 역)씨가 졸혼을 선언하면서 졸혼에 대한 찬반 논쟁이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졸혼(卒婚)’이란 단어는 일본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 출간한 책 ‘졸혼을 권함’에서 처음 등장한다. 꽤 오래전 단어인데 최근 드라마로 재조명되고 있는 셈이다.

자녀들 출가시킨 후 그동안 자녀들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참고 살았던 노부부들이 ‘황혼이혼’을 해 이혼율의 증가에 한몫하고 있는 이때 새로운 부부관계 정리법의 해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2016년 이혼 10만 9153건 중 동거기간 20년이 넘는 경우가 3만 2626건으로 전체 이혼율의 30%에 해당하므로 황혼이혼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긍정적 측면도 있고 부정적 측면도 있어서 새로운 부부관계로 정착하려면 많은 논의도 필요하고 사례들도 충분히 쌓여야 하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겠다. 성공적인 졸혼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졸혼 후 서로에게 이성친구가 생겼을 때 어느 정도까지 허용할지, 함께 일군 재산분배는 어떻게 할지 등등 서로간의 충분한 합의와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졸혼에 대해 노해숙씨(55, 하계동)는 “결혼생활 30년이 다 되가는데 이혼을 하는 것도 번거롭고 그렇다고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상 차려야 하는 것은 싫은데 졸혼이라는 형식을 빌려 각자의 사생활 영역을 갖는 것은 좋은 방법일 수 있겠다 싶어요. 여자들에게는 긍정적이면서 환영받을 수 있는 결혼관계입니다”고 긍정적 평가를 한다.

부정적 의견도 많다. 박근수(61, 고양시)씨는 “말장난에 불과합니다. 별거를 그럴듯한 단어로 교묘하게 위장한 거나 다름없어요. 밥도 차려주기 싫으면 이혼하는 게 맞지 ‘졸혼 입네’ 하면서 아내로서의 의무도 안 하면서 권리만 찾자는 거나 다름없어요.”라며 강하게 반발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보면 여자들은 긍정적 평가가 남자들은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듯싶다. 남자들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 해도 아직까지 부모님 세대는 가부장적인 김갑수씨의 아버지 모습이 여전히 대세일지고 모른다. 여기에 아내와 딸들은 김미숙씨의 ‘졸혼 선언’을 대리만족으로 박수쳐가며 응원해 아버지 김갑수씨가 밥상 차리는 그날을 응원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여고동창회에 다녀온 할머니가 풀이 죽어있어서 할아버지가 ‘또 누가 명품백이라도 매고 왔는가?’하고 물었더니 할머니 왈 ‘나만 남편이 살아있어요’ 하고 답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을까? 남편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씁쓸한 이야기다.

최근 친구의 졸혼 상담에 골머리가 아팠다는 최종희(언어와 생각연구소 공동대표)씨는 “나이가 들면서 어쩌면 자연스레 정상적인 부부도 반졸혼 상태가 됩니다. 각자의 취미도 다르고 잠자리 온도도 다르고 기상시간, 좋아하는 TV프로그램, 음식 등등을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지요. 다르다 해서 틀린 것이 아닌 만큼 집안에서도 ‘따로 또 같이’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자가 행복할 때 ‘함께’가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혼, 이혼, 졸혼의 형태가 중요한 게 아니고 서로가 가장 행복한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존중과 배려라는 선행조건이 갖춰져야 하지만 말이죠.” 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오래 함께 살아온 관계니 ‘내 맘 데로’가 아닌 상대방 마음을 더욱 존중하고 헤아리고 소중하게 가꿔나가야 내가 행복해져 ‘검은머리 파뿌리’ 되는 결혼서약을 지키는 백년해로 부부가 될 수 있겠다.

“다시 태어나도 현재의 남편 또는 아내와 결혼하시겠습니까?” 에 ‘네’가 아니더라도 요즘처럼 너무 쉽게 헤어지기 보다는 이혼법정의 숙려기간처럼 이혼장 던지기 전에 졸혼 기간을 갖고 그 기간에 한번쯤 더 서로간의 관계에 대해서 한걸음 떨어져 생각해 보는 기간으로 활용되어도 좋겠다. 아내의 ‘졸혼 선언’으로 ‘밥상 차리는 남자’로 전락하기 전에 스스로 가부장적인 시대에 뒤떨어진 남자는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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