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BLOG NEWS
영화 '택시운전사', 1000만 명 태웠다폭넓은 공감대 형성한 광주이야기
2017.08.21 | 최종 업데이트 2017.08.21 17:44 | 이승휴 기자
영화 택시운전사 홍보 이미지

올해 처음 천만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의 돌풍이 신선하다. 전 연령층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광주민주항쟁 이야기인 ‘택시운전사’를 본 이후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있는 힌츠페터 추모비를 보러온 방문객수도 증가했다고 한다.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고(故) 힌츠페터라는 외신기자는 외신 중 가장 발 빠르게 1980년 그날의 광주에 진입해 목숨 걸고 현장을 생생히 기록했고 사실을 알렸다. 김사복(송강호 분)과 위르겐 힌츠페터는 실존 인물이다. 서울에서 광주, 광주에서 김포의 여행을 함께한 두 사람은 암흑에 가려진 진실을 캐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화한 ‘택시운전사’가 전 연령대에 고르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면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천만관객을 불러 모았다.

광주이야기를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화를 함께 보면서 자연스레 그 시절의 아픈 진실들을 이야기 해줄 수 있어 좋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느끼고 현실적으로 역사를 배우는 것과 같아 교육적으로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 이전의 영화 ‘화려한 휴가’도 그랬다.

‘택시운전사’가 더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택시운전사인 김사복이 어쩌면 지극히 소시민적인 삶을 살았던 대다수 시민의 표본이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사복은 대학생들의 데모도 ‘부모가 뼈 빠지게 일해서 대학 보내놨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광주로 가주면 거금을 준다 해서 광주상황이 어떤지 전혀 모른 채 외국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들어간다. 거기서 군인들과 사복경찰들이 무방비 상태인 대학생과 시민들에게 무차별 총격과 공격을 가하는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의식이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그린다.

무서워서 도망쳤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아버지를 기다리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손님을 놓고 왔어. 손님을 모셔다 주고 집에 갈게. 기다리고 있어.” 하는 대목에서 울컥해진다. 관객 모두 김사복化 되어지는 명장면이다.

급박한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하다보니 극중 옥에 티 장면으로 광주 택시운전사들의 차량대결신이 나오는데 스릴 넘치긴 했지만 전체 스토리에서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상업영화로서도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부른 과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 당시 광주 개인 택시운전사들도 분개해 시민봉기에 적극 동참했음을 우회적으로 알리기 위한 부득이한 장치였을지 모르지만 상업적으로도 성공해야겠다는 강박증이 불러온 장면이 아니었다 싶다.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에 기뻐한 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도 인터뷰에서 고인이 만약 이 영화를 봤다면 어떤 말을 하였을까? 란 질문에 ‘나 저렇게 택시 충돌 경험 안했는데..’할 거 같다고 말했다. ‘지난 과거에 대한 묘사 특히 광주를 잘 담은 것 같다. 민주화 투쟁에 대한 열정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의미를 높게 살 거 같다‘고도 말했다.

남편이 사망 직전 ‘죽으면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기억해 지난 2016년 5월경 남편의 머리카락과 손톱 유품을 보냈고 고인의 유품은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 모셔졌다. 부인에게도 이 영화는 의미가 커 보인다.

아직도 미완(未完)의 광주이야기를 소시민이었던 택시운전사의 눈과 외국인 기자의 눈을 통해 무법천지로 꽉 막혀 모든 언론이 통제된 상태에서 폭도들의 난동쯤으로 호도되고 있었던 광주의 진실을 눈으로 카메라로 담아 전달하려고 했던 노력이 그려졌지만 김사복 역할을 맡았던 송강호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이 있었기에 천만관객의 호응이 있었던 것 아닐까 한다.

그저 내 눈 앞에서 자식이 죽고 누이가 죽고 손주가 죽어나가는 장면을 목격하는데 무슨 이념이 있고 사상이 있을까? 살리고자 하는 애끓는 사랑만 있었으며 살고자 하는 본능만 있었을 것이다. 영화 장면에는 없지만 마지막 도청사수를 했던 시민들과 학생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설마 우리를 다 쏴죽이진 않겠지?’ 하는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왜 죽어야하는지도 모른 채 죽었을 그래서 아직도 구천을 떠돌 영혼들로 인해 마음이 아팠다. 얼마 전 읽었던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가 떠오른다. 다시는 이 땅에 이토록 참담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다.

이승휴 기자  tmdgbtkfkd@naver.com

<저작권자 © 프레스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