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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의 공포소설 속 작가의 상상력, 현실화 우려
2017.05.04 | 최종 업데이트 2017.05.04 10:17 | 이승휴 기자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유토피아의 반대 개념인 디스토피아는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 대표작으로 A.L.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1932)와 조지 오웰의 <1984>(1949)가 있다. 이 작품들은 현대 사회 속에 있는 위험한 경향을 미래사회로 확대 투영함으로써 현대인이 무의식중에 받아들이고 있는 위험을 명확히 지적하는 점에서 매우 유용한 방법 중 하나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미국 드라마 ‘핸드 메이즈 테일-시녀이야기’는 이런 디스토피아 영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어쩌면 사회적 불안으로 인한 저출산이 몰고 올 파장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재앙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공포심마저 느끼게 된다.

‘핸드 메이즈 테일-시녀이야기’는 기독교 극우 근본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들은 전쟁과 환경오염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에서 여성을 국가적 자원으로 보고 적극 통제한다. 직장과 계좌를 빼앗고 발목에 네 자리 숫자와 눈 하나를 그려 넣은 뒤 가임 여부에 따라 이들을 재배치한다. 현실 속 남편과 아이를 모두 빼앗긴 채 마치 군대 같은 새로운 세계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자는 빨간색 드레스에 하얀 베일을 쓴 아기를 낳는 ‘시녀’와 집안일을 하는 녹색 드레스의 ‘하녀’ 그리고 감정을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아내’의 몫으로 나누어진다. 시녀가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식민지로 추방돼 핵 쓰레기를 치우며 살아야 한다.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에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씨받이’가 연상되면서 인구 증산책에 여성이 자원취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A.L.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미래는 과학기술의 지나친 남용으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되는 끔찍스러운 세계가 그려졌다. 한 난자에서 108가지의 인간을 재생산해내는 공장과 그 아이들을 타율과 강제에 의해 주워진 교육과 훈련을 통해 감정을 최소화시키고 안정적 세계질서를 최고의 가치로 두는 절대 독재자 체제를 그린다. 헉슬리는 작품 속에서 ‘비인간적인 기계문명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로 대변되는 인문학 정신’이라는 점을 나타내고자 했다. 4차 산업 혁명시기인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발달과 인문학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는 전제주의 체제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기관 ‘빅브라더’가 있다. 그는 비밀스런 감시를 행하는 유령이다.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불안을 살피는 정신이며 당신을 고문실이나 수용실로 보내기 위하여 새벽 4시에 집 앞에 서있는 비밀경찰의 괴수이기도 하다. 정부는 주민들을 지속적인 관찰과 조작, 세뇌를 통해 통제하는 국가적 전제주의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오늘날로 보면 ‘빅브라더’가 CCTV일 텐데 나도 모르게 찍히는 횟수가 얼마나 될까? 상상해보니 실로 모골이 송연해진다.

소설 속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는 작가의 상상이지만 작가의 뛰어난 예지통찰력은 미래사회를 정확히 예측해냈다는 점이다. 미국은 트럼프 정권 이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디스토피아가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를‘ 공포로 둔갑했기에 미국드라마 ’핸드 메이즈 테일‘이 새로운 울림이 있는 디스토피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디스토피아 소설에 대한 수요는 최악의 사태에 도달했을 때가 아닌 거기로 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정점에 다다른다. 백인, 남성, 기독교 우월주의자인 트럼프가 자국민 최우선주의를 모토로 강행하는 정책들로 퇴보하는 민주주의가 되어 ’디스토피아‘ 공포가 확산되듯이 우리나라도 코앞의 대선에 국가 미래가 달려있으니 옥석을 잘 가려 뽑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저출산은 당장 학령인구 저하로 초등학교 폐교에 이어 중,고교 폐교로 이어지고 있다. 교사수도 줄어 기간제나 시간제 교사의 해임과 미발령 교사 적체 현상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기존교사들은 과도한 행정업무로 교육의 질도 당연히 떨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주역인 교육주체가 바로서야 미래의 비전과 대안이 마련될 터인데 디스토피아적 위험만 도처에 지뢰처럼 깔려있다. 디스토피아를 극복해 유토피아를 제시해주는 지도자가 절실한 이유다.

이승휴 기자  tmdgbtkfk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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