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영화 '원라인' 포스터

지난달 29일 신종범죄 오락영화 ‘원 라인’을 보았다. 2000년대 중반 성행했던 사기대출을 소재로 한 영화로 '덜 나쁜 놈'과 '나쁜 놈'의 대결구도로 짜여 져 있다.

덜 나쁜 놈(진구 分:작업 대출의 신사, 임시완 分:작업 대출의 신동)이 나쁜 놈(보험 전세 자동차 담보대출로 하층민들 등골 빼먹는 놈)을 사기 쳐 불쌍한 서민들에게 일부 나눠주며 끝났는데 왠지 찜찜했다.

인간의 유형을 지극히 단순화시켜 덜 나쁜 놈과 나쁜 놈의 대결구도라 덜 나쁜 놈이 나쁜 놈을 박살내는데 시원한 박수가 안 나온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좋은 놈의 부재 때문이었다.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을 고를 수밖에 없는 사회는 건강성을 담보하기 힘든지도 모른다.

최근 종영된 tv드라마 ‘김 과장’도 덜 나쁜 놈이 나쁜 놈을 잡는 구조로 진행되었다. 목포의 조폭 휘하에서 경리과장으로 적당히 떡고물을 챙기며 탈세 장부를 관리하던 덜 나쁜 놈 김 과장이 서울로 상경한다. 거대 TQ 그룹에서 무지막지한 부정부패 재벌총수 세력인 나쁜 놈을 물리치는데 주축이 된다는 이야기다. ‘원 라인’이나 ‘김 과장’에서처럼 좋은 놈 부재인 세상에서 덜 나쁜 놈이 대세인 모양이다.

선출직 공무원, 대기업 총수, 고위직 공무원, 성공한 연예인, 스포츠 스타, 저명한 교수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들을 우리는 사회적 공인이라 부른다. 공인들은 대중이 보다 높은 행동양식과 표준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공인들인 만큼 좋은 놈의 표준을 구축하는데 앞장서야 하는 사람들이며 ‘좋은 놈’으로 구성되어야 국가의 미래가 밝다 하겠다. 적어도 좋은 놈은 아니더라도 덜 나쁜 놈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좋은 놈도 아니면서 자신을 좋은 놈으로 착각하거나 그런 의식에 사로잡혀 잘못되었을 경우 출발은 ‘선의’였다고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그 선의가 국가 전체의 비전과 연결되면 정의와 결부시켜 ‘사회적 정의’를 위해서라면 소수의 불평은 희생되거나 감내되어야 한다고 발전되는 것이다.

머리가 안 좋은 나쁜 놈은 주먹으로 주변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머리 좋은 나쁜 놈은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켜 나라 전체를 구렁텅이로 빠뜨릴 수 있는 것이다. 작금의 최순실 사태로 국정이 농락당하고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는 헌정 초유의 사례는 좋은 놈 부재의 시대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5월 9일 대통령 선거일이다. 2017년 대선 예비후보자 16명이 6천만 원씩 내고 후보등록을 했다. 정식 등록을 하려면 2억4천만 원을 더 내야 하고 등록 안 해도 이미 낸 6천만 원은 국고로 환수된다. 몇 명이 정식등록을 할지는 모르겠다.

실업률 대책, 일자리 창출, 가계부채 경감대책, 미세먼지 대책, 저 출산 인구고령화 대책, 5G환경 개척, 사드 대책 등 산적한 정치 경제 현안문제에 대한 정책대안을 가진 후보를 중심으로 좋은 놈을 선택해야 최고이겠지만 좋은 놈이 없다면 차선책으로 덜 나쁜 놈이라도 뽑아야 하는 것이다.

국민 투표권을 바르게 행사하는 높은 시민의식으로 한 표를 행사해야겠다. 자칫 5월 첫 주 징검다리 연휴기간에 봄꽃의 유혹이 강렬하겠지만 우리들의 권리이자 의무를 바르게 행사해 좋은 놈이 되도록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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