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인상 주춤···소비·세수 증대 선순환 안 돼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년간 아베신조 일본 총리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재계에 임금인상을 요구했던 이른바 '관제춘투'가 끝났다. 춘투는 봄철 일본의 노사간 임금협상을 말하는데 이과정에서 정부가 재계에 임금인상을 직접 요구하면서 관제춘투라는 말이 붙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임금인상을 지렛대로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아베 정부의 의도는 먹혀들지 않았다. 자동차, 전자 등 주요기업 임금 교섭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월 기본급 인상이 전년 수준을 밑돌았다.

일본 고용시장은 22년만에 최저 실업률을 기록하는 등 '완전고용' 수준임에도 임금 상승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성과 고령층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정규직·비정규직 임금차를 줄이려는 움직임에 따라 임금 상승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 것 만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의 의도대로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 소비를 늘리고 기업이 생산을 늘려 다시 임금을 올리는' 경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는 있을까?

실업률 3%는 일본경제에서 실업과 결원이 일치하는 구조실업률로 간주되는 수준이다. 노동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거의 비슷한 상태로 완전고용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완전고용 상태에서도 실업률이 0%일 수는 없다. 아무리 경기가 좋아 일손이 딸리는 상황이라도 각종 이유로 근로자가 실업상태인 비자발적 실업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라는 경제의 기본개념에서 보면 구조실업률에 가까운 수준으로 실업률이 하락할 경우 임금 상승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다. 다만, 실업률 하락이 반드시 임금상승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고용시장의 주된 배경인 경제·사회상황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임금이 오르면 먼저 서비스가격이 인상되고 이는 다양한 상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물가를 끌어올린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 근로자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그에 맞는 임금인상을 요구한다. 즉, 임금상승률과 물가상승률 사이에는 밀접한 상호관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본에서 완전고용에 가까울 정도로 실업률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일본 소비자들의 소비의욕 저하를 문제삼기도 하지만, 소비침체는 소비자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소득의 문제다.

국내총생산(GDP)통계의 가계저축률을 보면 1994년 13.0%에서 2015년 0.7%까지 하락했다. 즉, 과거에 비해 실질소득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가계는 가처분소득의 거의 대부분을 소비에 충당하기 때문에 만약 저축률을 마이너스로 유지한다면 현재 소득에서 더 많은 부분을 소비에 충당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줄일 필요가 있지만, 경기가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산을 줄여가며 소비에 충당한다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소비행태라고 볼 수 있다.

즉, 가계의 소비가 저조한 것은 소비의욕 문제가 아니라 소득이 부족한 때문으로 소득이 늘지 않는 한 소비도 늘어나지 않게 돼있다.

지난 30일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일본 가계(2인 가족 이상 대상)의 엥겔지수는 25.8%로 2015년에 견줘 0.8% 포인트 상승했다. 1988년 이후 최고치다. 일본 엥겔지수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하락 경향을 보이다가 2005년부터 상승으로 역전됐으며 최근에는 상승폭이 더 커지고 있다.

엥겔지수는 가계 소비 중 식료품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인 일본에서 엥겔지수가 도리어 높아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엥겔지수가 높아진 가장 큰 요인은 일본경제가 성숙해지고 소득 증가가 둔화되는 가운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자 가구는 자녀에 대한 교육비 등의 지출이 없으므로 엥겔지수가 높은 특징을 보인다. 엥겔지수가 2005년을 기점으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 반드시 일본 가계의 소비지출 여력이 감소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의 엥겔지수 급상승은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변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오히려 소득이 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생활에 필수적인 식료품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임금이 상승하면서 식료품 가격 등의 물가가 자연스럽게 오르는 순서로 진행되면 문제가 없지만, 이와는 반대로 물가상승이 임금상승보다 먼저 진행되면,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소비 부진으로 이어져 결국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일본의 소비자 물가지수(신선식품 제외한 종합)는 지난해에 들어서 전년대비 하락경향을 보였다. 정부와 일본은행이 목표로 내세웠던 2% 물가상승률 목표가 더욱 멀어진 것은 물론 국내소비의 관점에서도 실질소득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물가하락은 원유가 하락이 가장 큰 요인이었지만, 원유가 하락세가 멈추면서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도 상승전환하고 있다. 이대로 원유가격이 예년 수준으로 돌아선다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올해 말경에는 전년대비 1%대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춘투 임금협상에서는 물가 동향도 논의의 대상이지만 논의의 기반이 되는 물가는 2016년 말의 물가상승률이다. 이러한 이유때문에 임금인상 속도는 물가상승보다 지연되는 경향을 보이게 돼있다.

이대로 물가가 오르면 임금상승이 물가상승을 따라가지 못하게 돼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아 소비침체 빠질 우려가 높은 셈이다. 물론 물가상승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재정·금융정책을 총동원해서 어떻게든 물가를 끌어올려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겠다는 전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임금상승이 선행되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와 국민소득(NI) 중에서 차지하는 임금 비율을 나타내는 노동분배율은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감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소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노동분배율의 상승이 필연적이다.

이는 정부가 재계에 임금상승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세제나 고용에 관한 법제도 정비, 고용관행, 경제에 관한 접근방법 등 사회적규범을 포함한 폭넓은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소득격차 확대가 문제시 되고 있는 것처럼 노동분배율을 높이는 것이 일본경제의 디플레이션 탈출 뿐만 아니라 선전국형 경제 안정화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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