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에 고령화 겹쳐 노인 빈곤 심화

65세이상 인구 70% 노후파산위험 노출

식사는 하루 한 끼가 고작이고 병원비 낼 돈 조차 없어 약국 약에만 의존하다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신 빈곤 노년층 '하류노인', 바로 초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일본의 처참한 민낯이다. 
 
하류노인들의 마지막 종착지는 노후파산이다. 노후파산이란 수명이 길어진 노인들이 불안정한 소득과 병치레 등으로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다 파산해 의식주 모든면에서 자립능력을 상실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전체 인구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일본의 노후파산 규모는 어느정도 수준에 다다랐을까?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예금을 포함한 금융자산이 500만엔 미만의 고령자가구를 '하류'라 칭한다. 금융홍보중앙위원회의 '가계 금융행동에 관한 여론조사(2인이상가구·2015년)' 결과에 따르면 60대 이상 가구중에 금융자산 500만엔 미만 가구는 무려 40%를 넘어 거의 절반 가까운 가구가 하류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 70%이상은 예금을 포함한 금융자산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일본 총무성의 '가계조사연보(2014년)'에 따르면 부부가 모두 65세 이상인 가구의 평균 가계수지는 월 5만6천엔 적자다. 2005년에 2만6천엔 적자였던 평균가계수지 적자폭이 두배이상 확대된 것이다.
 
불과 10년만에 가계수지 적자폭이 두배이상 늘어난 배경은 종신고용이나 연공서열이라는 일본형고용시스템이 붕괴되어 생애연수입이 줄어든데 있다. 생애연수입과 연동된 고령후생연금의 수령액이 줄어든 것도 또다른 요인 중의 하나다. 게다가 연금 지급연령이 늦춰지는 등 정년이후의 가계수지 환경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가계수지 내역을 살펴보면 소비지출은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등 비소비지출의 부담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연금수입이 있어도 월 5만6천엔의 적자라면 연간 67만2천엔. 만약 90세까지 산다면, 65세부터 25년간 누계적자액은 1680만엔에 달한다. 만약 10년전이었다면 780만엔 정도로 퇴직금이나 저축 등으로 어떻게든 충당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바꿔 말하면 최근 10년 사이에 하류노인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두배 이상 높아졌단 이야기다.
 
하지만, 금융홍보중앙위의 조사를 보면 60세 이상 고령자가구 중 노후파산을 회피할 수 있는 적정규모의 금융자산(1500만엔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는 약 30%에 불과하다. 즉, 90살 까지 산다면 절반은 커녕 70%에 달하는 고령자가 노후파산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19일 일본의 총무성이 '경로의 날'을 맞아 공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9월 15일 기준 3461만명으로 인구 1억 2695만명의 27.3%에 달한다. 즉, 65세 이상 인구의 70%인 2422만명이 향후 파산할 잠재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일본경제 성장 추이를 볼때 노후파산 문제는 개선은 커녕 더욱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현역세대인 중년층의 수입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연금보험료는 지속적으로 인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담은 늘어만 가는데 연금 지급시기는 미뤄지고, 지급액도 줄어들 것이 뻔하다.
 
부모세대에게 물려받은 주택 등 부동산자산이 있다면 이것을 팔아서라도 어떻게든 연명할 수 있겠지만, 그 후에는 물려줄 재산이 남지 않게 되므로 자식, 손자세대까지 생각하면 노후파산 리스크는 점점 높아질 뿐이다.
 
후생노동성의 '국민생활기초조사현황(2014년)'에 따르면 고령자가구의 27.1%가 '생활고에 매우 시달린다', 31.7%가 '약간 시달린다'라고 응답해 약 60%에 달하는 고령자가구가 경제적인 빈곤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빈곤이 심각한 것은 범죄나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 법무성이 지난해 발표한 ‘2014년 범죄백서’에 따르면 형사 처벌된 범죄자 중 18.8%가 65세 이상이었다. 1995년 3.9%에 비하면 약 20년 사이 4배 증가한 수치다. 노인 비율이 당시 14.6%에서 25.9%(2014년기준)로 늘어난 걸 고려하더라도 폭발적인 증가세다.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사회에서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 범죄도 해마다 늘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기 보단 의식주가 해결되는 교도소로 선택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는 도카이도신칸센 객차안에서 71세 남성이 분신자살해 옆에 있던 여성 승객 1명도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분신자살한 노인이 살던 아파트의 한달 집세는 4만엔. 매달 받는 연금 12만엔에서 집세를 제하면 생활이 빠듯했다. 분신을 시도하기 전 그는 "일을 구할 수도 없고, 연금만으론 살 수가 없다"며 신세한탄을 했다고 한다. 참혹한 사건의 배경에 생활고에 시달리던 하류노인의 삶이 있다.
 
NHK 스페셜 제작팀이 펴낸 ‘노후파산-장수의 악몽’에 따르면 한국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하류노인은 600만명을 넘어섰다. 이중 3분의1인 200여만명은 의식주와 관련한 모든 면에서 자립 능력을 상실하고 고립된 노후파산의 삶을 살고 있다.
 
일본은 공적·사적연금 등 고령화에 적극 대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노후파산의 확산을 막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문제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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